나태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퇴사 1일차 오늘의 일기

by 김시온

아침 8시 30분쯤, 평소보다 느즈막하게 눈을 떴다. 밥은 먹지 않았다. 대신 바로 뛸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체력이 안 돼서”, “날이 너무 추워서” 같은 이유로 달리기를 미뤄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핑계를 댈 수 없게 됐다. 내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던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아졌다. 춥고 아프더라도 회복할 수 있는 여유가, 내겐 이전보다 넘치게 생겼다.


호기롭게 10km를 뛰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현실적으로 5km도 벅찰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두려움은 있었지만 발걸음은 멈출 수 없었다. 차를 몰아 동구구민운동장으로 향했다. 이미 트랙을 도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괜히 마음이 급해져 서둘러 몸을 풀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뛰려니 몸이 긴장했는지, 스트레칭을 하는데도 근육이 이미 뭉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몸을 풀고 나서야 트랙에 섰다. 한 바퀴는 400m. 한 바퀴를 뛰자마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문득 예전에 15km를 뛰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어떻게 그 거리를 뛰었을까.’ 그 시절의 나를 속으로 칭찬했다.

사실 교회 동생 중 한 명이 요즘 꾸준히 달리는데, 점점 기록이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괜히 지기 싫다는 마음이 들어 이를 악물고 호흡에 집중했다. 2.5km쯤 지났을 때, 먼저 뛰고 있던 두 사람은 트랙을 벗어났다.


‘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까. 왜 이 시간에 뛰고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런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줄어드는 거리보다 남은 거리에 더 절망하게 될 것 같았다.

두 달이 넘는 공백, 그리고 유난히 추운 날씨 탓에 힘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금 멈추면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3km에서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몇 번이나 스쳤지만, 15km를 뛰어본 적 있는 나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가끔은 과거가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이렇게 나를 밀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는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 달리는 사람이다. 다만 오래, 멀리 달리기 위해 일부러 잡생각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금은 40km를 뛰고 있고, 2km만 더 가면 풀코스를 완주하는 상황이야. 그래도 멈출 거야?’
도움이 되는 상상이다. 결국 5km를 힘겹게 완주했다. 기록은 예전만 못했지만, 완주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아주 잘 살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 뜨지도 않은 오전 9시였는데도 말이다. 잠시 벤치에 누워 숨을 고른 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하나라도 더 해두자는 마음으로 해야 할 일들을 촘촘히 정리해 나갔다.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2월 말에 있을 교회 수련회, 매월 첫째 주에 드릴 본당 예배, 그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했다. 연말정산과 부가가치세 신고도 해야 했고, 내 업무를 인수한 담당자에게 걸려오는 전화도 받았다. 퇴사 직전 급하게 인수인계를 하다 보니 전달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용도 많았고 과정도 다소 얼렁뚱땅 진행돼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도와줄 수 있는 만큼은 돕기로 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피로가 몰려왔다. 잠깐 낮잠을 잔 뒤, 다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예전에 글을 꾸준히 쓰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생산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분명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퇴사하면서 지원했던 일 역시, 과거에 써둔 글과 만들어둔 콘텐츠 덕분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었고 준비도 수월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쓰려고 한다.

시간이 많다고 해서 함부로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이 시간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분명 어딘가에 있다는 걸 떠올리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미루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일은 청년부 수련회 답사를 가고, 이제는 전전 직장이 되어버린 그곳의 사람들과 대부도로 놀러 갈 예정이다. 그러니 그 전에 할 수 있는 일들은 최대한 미리 해두어야 한다.

즐길 때는 제대로 즐기고, 그 시간을 글로 남길 생각이다. 기록하는 습관은 내가 꿈꾸는 사업에 반드시 필요할 테니까.
몇 명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읽는다. 그걸로 충분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KakaoTalk_20260123_195951982.jpg


작가의 이전글디지털 쓰레기는 누군가의 자신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