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5일 차, 오늘의 일기
오늘도 어김없이 어머니와 아침을 먹고 출근길을 배웅해 드렸다. 돌아와서 분리수거를 마쳤다. 마음 같아선 개수대에 쌓인 그릇들까지 말끔히 해치우고 싶었으나, 내 몸은 거기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아마 설거지는 내일의 나에게 토스하게 될 것 같다. '하루에 하나씩은 제대로 해내자'는 목표는 잘 지켜지고 있지만, '하나씩'이라는 단어에 내 몸이 너무 충실히 반응하는 탓일까. 두 가지 이상의 과업 앞에선 몸이 고장 난 기계처럼 멈칫거린다. 하지만 자책하진 않는다. 지금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잡는 시기니까.
분리수거를 마치고 노트북을 폈다. 사업계획서를 다듬으려던 찰나, 지원했던 곳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아티클 에디터'. 글을 다루는 직무다. 나는 잠시 사업계획서를 덮어두고 면접 준비에 몰입했다. 에디터란 무엇인가. 독자는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니라, 에디터만의 고유한 '관점'을 궁금해한다. 이 관점을 연구할 겸 영화를 보고 에디터의 관점으로 글을 쓴다. 내가 쓴 글이 독자에게 어떤 의미로 닿을지 기획하는 힘. 그 에디터의 눈으로 오늘 본 영화 <그린북>을 파해쳐본다.
영화 <그린북>은 1960년대, 인종차별이 공기처럼 만연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제목은 당시 흑인 여행자들이 묵을 수 있는 숙소와 식당을 안내한 가이드북 '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에서 따왔다. 이야기는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다혈질 이탈리아계 백인 운전사 '토니 발레롱가'의 동행을 그린다. 흥미로운 건 두 사람의 역설적인 상황이다. 셜리는 부와 명예를 가졌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무대 아래선 철저히 고립된 섬이다. 반면 토니는 당장 일자리가 없어 허덕이는 백인 가장이지만, 그에겐 시끌벅적하고 따뜻한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은 8주간의 남부 투어를 떠난다. 처음엔 토니도 셜리를 무시했다. 그저 돈을 주는 '고용주'니까 참았을 뿐, 계급장 떼고 만났다면 가장 앞장서서 셜리를 조롱했을 인물이다. 셜리의 점잖은 요청을 틱틱거리며 무시하던 토니. 하지만 셜리의 연주를 듣고, 그가 겪는 부당한 멸시를 목격하며 토니의 마음속에 변화가 일어난다. 무시하던 대상이 '지켜줘야 할 사람', 나아가 '자랑하고 싶은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영화는 묻는다. 당시 시대상과 정반대로 고결하게 행동하던 흑인 셜리와, 노동자처럼 거칠게 살던 백인 토니. 이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운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피부색도, 계급도 아닌 서로를 '사람'으로 대하는 온기였다. 영화의 끝자락, 서로의 결핍을 이해한 두 사람의 우정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덥힌다.
영화를 보며 인종차별이라는 거대한 악(惡) 앞에 다시금 전율했다. 다 같은 사람인데, 누가 그 선을 그었을까. 인간의 악함은 서로를 향한 온정마저 차갑게 식혀버린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차가운 세상을 다시 따뜻하게 데우는 것 또한 사람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왜 이토록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을 허락하셨을까?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나는 토니와 달리 편견 없이 그들을 대했을까? 선뜻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어 두려웠다. 내 안에도 여전히 꿈틀거리는 죄성과 편견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을 너무 좁게 정의하고 있었다. 가족, 연인, 친구... 내 울타리 안의 사람들만 사랑이라 여겼다. 인류애적인 사랑, 이웃을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은 내 사전에 없었다. 96년생인 내 기억 속 어렴풋한 풍경 하나. 어릴 적 옆집 형네 문을 두드리고 밥을 얻어먹던 시절, 부모님이 늦으시면 동네 어른들이 나를 거둬주시던 그 시절엔 분명 '이웃 간의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타인에게 곁을 내어주기 무서운 개인주의의 성벽 안에 갇혀버렸다.
영화의 엔딩 크리스마스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셜리는 화려한 조명과 값비싼 오브제로 가득한 대저택에 홀로 남겨진다. 반면 토니의 집은 정신없고 좁아터질지언정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하다. 셜리의 공허한 표정과 토니의 집의 왁자지껄함이 대비되는 순간, 셜리는 결심한 듯 고급 와인 한 병을 들고 토니의 집을 찾는다. 백인들만 가득한 그 집에서, 모두가 셜리를 반긴다. 특히 토니의 아내가 셜리를 안아주며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장면은 그 어떤 장면보다 강렬한 메시지였다.
언젠가 우리가 천국에 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맞아주시지 않을까. 토니의 아내가 셜리를 안아주었듯이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받기만 하던 사랑을 흘려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내 마음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 통장의 잔고보다 중요한 건 내 내면의 충만함이다. 그 충만함의 근원이 어디인지 깨닫고, 사소한 것에 감사하며, 내가 누려온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음을 고백할 때. 비로소 우리는 텅 빈 화려함이 아닌, 꽉 찬 온기를 지닌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