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8일 차, 오늘의 일기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간다. 구불대거나 요령 피우지 않고 곧게 뻗어 나가는 직선. 하지만 그 직선 위에 '사람'이라는 변수가 개입하면 시간은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는 잠시 그 사람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 든다. 어제가 그랬다. 매일 글을 쓰고 하루를 기록하겠다던 다짐은 갑작스런 변수에 의해 궤도를 이탈했다. 연말 모임에도 연락 두절이던 친구가 뜬금없이 "드라이브나 하자"며 연락을 해온 것이다. 나는 지체 없이 시동을 걸고 친구가 있는 서울로 향했다.
친구를 태우고 반포 한강공원으로 달렸다. 신호 대기 중, 슬며시 옆을 보니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을 부러워하는 친구의 눈빛이 보였다. 서른하나. 이제는 그 눈빛이 어떤 무게를 담고 있는지 알 것 같은 나이다. 룸미러로 내 눈을 봤다. 백수의 자유를 만끽하러 가는 길이었지만, 거울 속 내 눈도 그리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한강은 여전했다. 전에는 이 강변을 다른 친구와 10km씩 달렸고, 뮤지컬 팝업 전시를 보러 오기도 했었다. 지난 10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강 건너 남산타워와 반짝이는 아파트, 호텔들의 불빛. 그 화려한 풍경 앞에서 나는 묘한 우수에 젖었다.
일이란 무엇이고, 돈은 무엇이며, 쉼은 또 무엇일까. 꿈 없이 기계처럼 돈만 벌던 시절에는 역설적이게도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꿈을 품고 퇴사한 지금, 그 여유는 사치스러운 죄책감으로 변했다. 화려한 야경 앞에서 머릿속엔 물음표만 둥둥 떠다녔다. 영하 10도의 강추위 탓이었을까, 아니면 현실의 냉기 탓이었을까. 고민을 털어놓던 친구도, 듣던 나도 어느 순간 입을 다물었다.
추위를 피해 친구 집으로 들어와 치킨을 시켰다. 스탠바이미 화면 속 유튜브 영상들을 보며 낄낄거렸다. 평소엔 보지도 않던 채널이었지만, '이것도 다 시야의 확장이야'라고 합리화하며 불안한 생각들을 차단했다. 시간이 많아지니 보고 싶은 영상도 딱히 없다. 이미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다 본 듯한 권태감. 숏폼이나 롱폼에 빠지는 건 결국 내 시간을 스마트폰에 헌납하는 일임을 알기에 경계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나는 스스로를 '시간 빌게이츠(시간 부자)'라 칭하지만, 이 재산은 유한하다. 부자일수록 돈을 더 아낀다는데, 끝이 정해진 시간 부자인 나는 왜 이리도 시간을 흘려보내는 걸까.
새벽 2시 50분, 늦은 잠을 청했다. 중간에 깨니 5시 50분. 다시 눈을 떴을 때 해가 중천에 떠 있을까 봐 덜컥 겁이 났다. 다행히 9시. 하지만 일어난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이불 속에서 유튜브를 보다가, 최후의 양심으로 누운 채 면접 준비를 했다. 누워서 면접 준비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기가 막힌 태도다. '너 진짜 간절하긴 하냐?'라는 질문 앞에 이제는 솔직해지기 어렵다.
오후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책장 깊숙이 꽂혀 있던 벽돌책, <사피엔스>를 꺼냈다. 퇴사하면 꼭 읽으리라 다짐했던 책이다. 5페이지를 읽고 졸기를 서너 번. 여전히 어렵고 지루하지만, 예전보다는 흥미가 생긴다. 인류의 역사를 내가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이 거대한 지식의 바다에 빠져 있는 동안만큼은 나의 자잘한 불안이 희석되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건 독서가 아니라, 불안하니까 뭐라도 붙잡고 있으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차라리 글을 쓰는 이 시간이 가장 평온하다. 100% 솔직해지고 싶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조금은 걸러낸다. 그럼에도 문장 사이사이에 내 감정의 찌꺼기를 최대한 털어놓는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만으로 해소가 된다. 왜 불안한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추천하는지 알 것 같다. 쓰기 전까진 죽도록 귀찮지만, 막상 마침표를 찍고 나면 묘한 쾌감이 밀려온다. 오늘도 쓰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