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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온 Apr 23. 2024

프롤로그

내 시선이 머문 곳

"발은 넓으면 무조건 좋아"






 곧이곧대로 믿었던 내 20대 초반의 삶은 사람들을 만나며 대부분을 보냈고 처음 보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낯선 설렘은 꺼지지 않는 서울의 밤 같았다. 


"내 친구 와도 돼?"라는 질문에 언제나 좋다며 화답하는 나는 늘어가는 전화번호 목록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금요일 퇴근부터 시작되는 주말은 늘 잔뜩 취해 있었고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 지키지도 못할 다짐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냥 즐거웠다. 꼭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낯선 동네에서 맛있는 음식과 멋있는 사진을 찍고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보이기도 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다. 서울에서 놀던 사람이 인천에서만 놀게 되고 매월 추가 되던 새로운 번호는 전화번호 목록에서 자리만 차지했다. 모든 사람을 다 챙길 수 없는 노릇이다. 스무 살 때부터 일을 했어도 큰돈을 번 것도 아니고 방위산업체에서 대체복무를 했더라도 엄청난 부를 축척한 건 더욱 아니었기 때문이다. 발이 넓으면 신발을 사기 불편하고 사람을 챙기기도 어렵다. 혼란이 찾아왔다. 아무도 만나지 못한 날에 느꼈던 아쉬운 감정들은 더 이상 아쉽지 않았고 오히려 감사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내 삶에 변화가 필요했다. 대학을 선택했고 회사와 가까운 대학에 갔다. 일과 병행하며 야간 대학을 다니게 됐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대학이라는 수준 높은 공부를 하고 말로만 듣던 캠퍼스의 낭만을 경험하게 됐다. (야간이어도 주말에 주간처럼 다녔다)


"뭐... 그 정도 쉬었으면 다시 놀아도 괜찮잖아?"


 거울을 보며 괜찮냐는 질문에 거울 속 내가 한 대답이다. 다만, 이전처럼 그저 놀기만 한건 아니다. 공부를 하고 노니 보상심리가 발동했다. 나에게 그 정도 쾌락은 허락되는 게 당연한 거라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자기 합리화'가 맞다. 열심히 일한 자, 열심히 놀아라. 열심히 공부한 자, 열심히 놀아라.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누가 이런 주옥같은 말들을 남겼을까? 내가 객석에 앉은 관객이었다면 이런 명언을 남겨준 그 예술인에게 기립 박수를, 어딘가에서 만난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라면 그분께 찾아가 스승의 은혜를 불러주고 싶은 학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부하고 싶은 마음 덕분에 대학에 가게 돼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굉장히 미화된 건 사실이다. 일 때문에 피곤한데 과제와 시험이 스트레스받게 했으니 그때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고민이 된다. 2학년이 됐을 무렵, 때마침 코로나가 터져서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갈등은 됐으나 아무렴 어떤가. 대학생활 중 동아리 빼고 즐길건 다 즐겼다. 내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정말 잘 놀았으니 후회는 없었다. 


 2015년 2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생산직으로 근무를 하다가 관리직인 총무팀으로 넘어갔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넘어갈 줄 알았는데 4학년 때 미리 넘어가게 됐다. 

 같은 회사지만 생산직과 관리직의 차이는 확실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명확했다. SNS에서나 보던 직장 상사 이야기는 실제로 있는 이야기였고 회사 업무는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단 한 개도 쉬운 건 없었다. 자책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말은 점점 더 어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는 늘었지만 내 심리가 위축돼서 그런지 안 좋은 점만 머리에 각인 됐다. 사람 만나는 건 여전히 좋았지만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낸 다음 충전된 에너지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언제부터인가 회사는 나랑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곧 10년을 바라보는 직장인이 맞나 싶었다. 이런 모습조차 나였으니 사색하는 시간에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삶의 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단계로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좋은 책들이 생각들을 바꿔주고 동기부여도 해줬다. 글쓰기까지 하고 미라클 모닝까지 하게 됐으니 말 다 한 거다. 가끔 철 없이 놀던 때를 회상하기도 하지만 독서하고 글쓰기를 하고부터는 회상하는 빈도가 줄었다. 내 일상에서 술은 줄고 글이 늘었다. 


자!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다.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는 중이고 내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은 한 줄의 글이 된다. 제일 오래 머무는 곳이 집이고 그곳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내가 그간 만났던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내 과거의 사람들과 함께 산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으니 딱 28명만 쓰겠다. 

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는 2월 주제였다. 그래서 28개의 이야기가 있는데 다 쓴 후까지만 해도 브런치에 글을 쓸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초고는 굉장히 짧다. 아무튼 그건 중요한 건 아니니 넘기고 바로 우리 집에 같이 동거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재밌게 보길 바란다. 어쩌면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집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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