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57일 차, 오늘의 일기
목표했던 사업계획서 3개를 마침내 모두 끝냈다. 태어나 처음 써보는 거라 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다 세 번째가 확실히 나아졌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 계획서를 쓸 때는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을 만큼 하기 싫었지만, 끝끝내 독하게 책상 앞을 지켜냈다. "이게 내 최선이었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집중하기 어려운 '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 하나만 빼고는 나름 최선이었다고 답할 수 있다.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나 재택근무자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침대와 소파의 유혹이 도처에 깔린 악조건 속에서도, 내 의지가 아주 조금 더 강해 무사히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 다행이다.
큰 산을 넘고 나니 후련함이 밀려오지만, 여전히 내 앞엔 해야 할 일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당장 22일 교회 레크리에이션 게임을 점검해야 하고, 27일 기도 콘서트 간증을 준비해야 하며, 밀린 블로그와 브런치 글쓰기, 그리고 4월 18일 축가 연습까지. 집안일 말고도 매일매일 내 손으로 처리해야 할 '나만의 일'이 있다는 것. 이것이 백수로서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묘미이자, 내일도 힘을 내어 눈을 떠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뼈저리게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열심히 사는 내 모습에 취하는 것'이다. 창업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으려면 "사업계획서 3개나 썼으니 이만하면 열심히 살았지"라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어선 안 된다. 지원 사업에 합격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만약 떨어지면 온전히 내 자본을 털어 창업을 강행해야 한다. 그 막대한 리스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다음 스텝을 찾아보고 준비해야만 한다. 계획서 제출 버튼을 누르고 잠시나마 자유를 느꼈지만, 사실 이 자유는 온전한 자유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의 자유'일뿐이다.
날이 추워지며 운동과 멀어졌던 지난겨울.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그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틈틈이 한다고는 했지만, 안 한 만큼 몸이 약해졌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신체의 근육이 빠지니 마음의 근육도 함께 녹아내렸다. 책 한 권을 길게 집중해서 읽지 못했고, 3일에 한 번은 꼭 올리겠다던 브런치 글쓰기도 온갖 핑계를 대며 미루기 일쑤였다. 관성적으로 지켜야 할 루틴들에 자꾸 브레이크가 걸리자, 급기야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 <질투의 화신> 클립 영상에서 조정석 배우가 남긴 명대사가 있다.
"자기 인생에 물음표 던지지 마. 느낌표만 딱 던져."
본 적도 없는 드라마의 짧은 대사 한 줄이 내내 가슴에 남았다. 얼마나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이면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그런 단단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내 몸과 생각을 스스로의 목표에 정확히 정조준하며 살아야 한다. 나 역시 치열하게 살아봐서 아는 감각이다. 분명 머리로는 아는데,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시간이 남아도는 지금에야 그게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일인지 깨닫고 있다.
퇴사 후의 시간은 유한하고 공평하지만, 당사자에게는 마치 무한한 것처럼 느껴지는 마법을 부린다. 그 평온함은 지독하게 달콤하다. 나를 지탱하던 모든 긴장과 경계를 허물어버리고, 끝내 주저앉게 만든다. 심지어 눕게 만든다. "자고 일어나서 오후에 하지 뭐." 그 한마디에 삶의 밀도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이 일기는 지난 나의 시간에 대한 뼈아픈 반성문이다. 나는 그동안 '열심'에 취해 살았음을 고백한다. 하루 24시간 중 자는 시간이 10시간을 훌쩍 넘겼고, 목표를 향해 책상에 앉아있던 시간은 5시간이었지만, 정작 스마트폰을 엎어두고 온전히 몰입한 시간은 고작 3시간 남짓이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운동화 끈을 묶어야겠다. 제발 다시 땀을 흘리고, 제발 체력을 길러서 쉽게 지치지 않고, 쓸데없는 짜증도 덜 내는 단단한 내가 되기를.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내일의 내 인생 앞에는 '물음표' 대신 짙고 선명한 '느낌표' 하나만을 쾅 찍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