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어준 커플은 결혼하고, 나는 사랑이 두렵다

퇴사 58일 차, 오늘의 일기

by 김시온

오늘은 어제의 일들을 기록하려 한다. 사업계획서 작성이 모두 끝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매일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남기겠노라 다짐했지만, 막상 블로그에 글 한 편을 쓰고 나니 진이 다 빠져버렸다. '일기는 내일 쓸까?' 잠시 고민했지만, 기어이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내게 찾아온 이 벅찬 감사를 활자로 고스란히 옮겨두어야만, 그 고마움이 더 진하게 내 안에 남을 테니까. (이거 쓴다고 힘 뺐다.)

https://blog.naver.com/inpersonal/224224445387




나와 전전 직장 동갑내기 친구가 합심해 주선했던 소개팅. 그 인연이 예쁜 연애로 발전하더니, 무려 다음 달에 결혼이라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었다. 주선자로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한데, 덜컥 축가까지 맡게 되었다. 게다가 신랑 신부 측의 '신청곡'까지 있는 터라, 평소보다 이상하리만치 어깨가 무겁고 부담이 된다.

어제는 예비부부가 소개 주선과 축가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내게 정장을 한 벌 사주었다. 셔츠 두 장에 넥타이까지 완벽한 세트로. 계산대에 찍힌 금액은 무려 50만 원에 가까웠다. 예전에 취업 면접을 보러 갈 때 내 돈 주고 샀던 정장이 고작 20만 원 남짓이었는데. 연애할 때를 제외하고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비싼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일까. 몸에 꼭 맞는 정장을 걸치고도 마음 한구석이 어색하고 덜컥 부담스러워졌다. 심지어 밥도 두 번이나 사준 그들에게, 나는 그저 무한한 감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정장을 맞춘 곳은 구월동 뉴코아 아울렛의 '지오지아'였다. 옷은 골랐고 넥타이만 추가로 맞추면 되는데, 매장을 아무리 둘러봐도 내 머릿속에 있는 그 디자인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패턴의 이름이 뭔지 몰라 설명조차 어버버 하고 있던 찰나, 길 건너 롯데백화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빈폴 매장을 지나다 마침내 내가 찾던 패턴의 넥타이를 발견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판매용 상품이 아니었다. 대신 예비 신랑인 친구의 친구 덕분에 그 패턴의 이름이 '솔리드 니트'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역시 백화점이라 있을 건 다 있네'라며 본격적으로 넥타이 사냥에 나섰지만, 야속하게도 다른 매장엔 솔리드 니트 타이가 없었다.

결국 희망 사항을 반쯤 내려놓고 적당히 타협하려던 순간, '지이크' 매장 직원분의 적극적인 호객행위 덕분에(?) 우연히 매장으로 빨려 들어갔고, 기적처럼 내 마음에 쏙 드는 넥타이를 발견했다. 솔리드 니트 패턴은 아니지만 내 마음에 들었으니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새 상품으로 받기 위해 3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만, 그깟 기다림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선까지 다 맡겨서 양손은 가벼웠으나 생각은 많아졌다. 문득 '나도 나중에 결혼하면 누군가에게 이렇게 베풀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생각하니,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는 건 어쩌면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내 것을 꼭 움켜쥐고만 살았던 것 같다. 전 여자친구에게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쓰긴 했지만, 온 마음을 다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는 진짜 사랑꾼들에 비하면, 나는 한 번도 철저하게 헌신적인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사랑이란 게 그래서 참 어렵다.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지레 겁먹고 방어막부터 치는 나. 굳이 지금부터 사서 할 필요 없는 쓸데없는 고민인데도, 벌써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에 빠져있는 나 자신이 스스로도 참 안타깝게 느껴진다.


사실,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좋아하는 게 맞는지 이제는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 그저 계속 신경이 쓰이는 정도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가도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 게 맞나?' 끊임없이 내 감정을 의심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서 몸을 사리게 된 걸까. 아니면 내가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지금의 편안한 관계에 변화를 주는 것이 무서운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결혼이 하고 싶다. 올해 나는 '창업'이라는 인생의 아주 큰 산 앞에서 과감한 용기를 냈다. 어차피 한 번 크게 용기를 낸 김에, 이 맹렬한 기세를 몰아 '연애'에도 과감히 도전장을 던지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