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리는 것이 아니라 길이 나를 받아주는 것이다.
모든 불안함과 공포는 '알지 못함'에서 온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과학적이고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늘 내게 무언가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법이 없었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었다.
엄마 옆에 누워 잠이 들었다가 잠시 잠이 깨면 엄마는 시체처럼 누워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엄마 왜?'라고 물었다. 엄마는 잠이 깬 나의 질문에 당황하지도 않고 두 눈을 꿈뻑이지도 않은 상태로 천장을 응시만 하고 있었다. 두번째 한번 더 물으면 엄마는 '그냥.' 이라고 대답했다. 검은 바다처럼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표정과 눈동자가 너무 신경이 쓰여 도무지 다시 잠이 들 수 없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언젠가 사촌동생과 우연히 통화를 하게 되었다. 사촌동생이 물었다. '누나, 외할머니 돌아가신 거 알아...?' 나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아주 애틋한 사이는 아니었어도 친할머니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나만 인터넷이 되지 않는 동네에 사는 사람이 지나간 흥행 영화 소식을 듣는 격으로 전해듣다니. 곧장 전화한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너 신경쓰일까봐.'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러 시골에 가는 길이었다. 기차역에서 부모님이 계신 시골집까지 가는 길은 대중교통이 좋지 않은 곳이었다. 기차역으로 마중나오는 엄마는 기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내게 도착 예정 시간즈음 꼭 전화를 걸었는데 나는 그 전화가 이상하게 부담스러웠다. 어느날도 마찬가지로 전화벨이 울렸고 나는 곧 도착한다고 말을 했다. 갑자기 엄마가 평소에 거의 쓰지 않는 단어를 쓰며 말을 했다.
'니(네)가 보고 놀랄까봐 말하는데, 삐야가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다) 좀 다칬다.'
방문하러 간다는 일정을 잡은 것이 벌써 몇주전인데 말이 없던 이야기다.
'... 어디를요...?'
'응, 동네 개한테 물려서 좀 다칬다.'
'많이 다쳤어요...?'
'응. 좀 다칬다."
엄마의 언어로 사실을 알려주며 '응, 좀 다쳤다'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언어로는 꽤 심각한 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엄마는 기차에서 내릴 시간이 얼마 안남은 것을 앞두고 이렇게 덧붙였다.
'아(강아지)가 냄새가 좀 난다.'
기차역에 도착할 때부터 긴장감이 팽배해졌다. 도대체 어디를, 왜, 어떻게, 얼마나 다쳤다는 것인지, 치료는 받았다는 것인지,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 냄새가 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어느것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 엄마의 화법은 언제나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한 배려인지 무엇인지 가늠을 할 수 없었다. 캐리어를 끌고 주차되어 있는 아빠의 차문을 열었다. 훅. 끼쳐나오는 냄새. 작은 치와와인 삐야는 뒷좌석에 엎드려 있었고 한 눈에 보아도 뒷다리쪽 상처가 모두 벌어져 있었다. 쿱쿱하고 삭은 살썪는 냄새가 그 짧은 사이에도 차에 베어 있었고 생명을 가지고는 있으나 쉽게 안아줄 수 없는 죽음의 냄새가 차에 쌓여있는 듯 했다. 주말인데도 문을 여는 읍내의 시골 동물병원을 찾았다. 따로 수술실도 없는 병원이었고 살을 꿰매는 동안 나더러 뒷다리를 잡는 보조역할을 맡겼다. 그리고 몇달 후 삐야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한달에 100km달리기를 생각하고 채워나가면서 처음에는 숨이 차서 힘들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곧 숨찬 것이 적응이 된 후에는 다리 근력이 문제였다. 꾸준히 운동을 해왔기에 근력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쇠질을 하는 근육과 내 몸을 스스로 지면에서 띄워올리고 바로 그 몸을 내리딛어 바닥을 밀며 나를 앞으로 나가게 하는 근력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4월부터 6월까지는 흐드러지는 꽃잎과 햇살을 보며 숨이 차거나 다리가 아픈 나를 위로하고 달리는 시간이었다. 무릎이 아플 때가 있었는데 왜 아픈지 돌볼 겨를이 없었다. 왜 아픈지를 '모르니까'.
7월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다. 원래 겨울보다 여름을, 추위보다 더위를 즐겼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7월의 어느 날에 비가 오는 날이 있었다. 웨어러블 기계들을 여럿 장착하고 있었기에 스포츠 탑에 바람막이를 덮었다. 모자를 쓰고 생의 첫 우중런을 나갔다. 비를 맞으며 달리니 여름을 맞아 떨어졌던 페이스가 40%정도 빨라졌다. '아, 기온이 큰 영향이구나' 생각했다. 달릴때는 신나서 몰랐던 기력이 달리기가 끝나니 훅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점심 특선을 파는 근처 식당에서 비에 젖은 옷을 입은 상태로 들어가 장터 국밥을 사먹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러고 싶었다. 평소 조도에 따라 기분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어두운 비오는 날임에도 그 날은 무언가 우울하지 않고 만족스러웠다.
더위를 아무리 좋아해도 올해 여름은 너무 더웠던 것 같다. 일요일 오전 7시에 런을 나갔다 들어온 어느날이었다. 뛰면서 '어라?'하는 느낌이 얼핏 들었다. 잘못하면 예상치 못한 상태로 쓰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더위를 먹는 것을 본인은 모른다는 기사도 생각났다. 아주 약간 울렁거리는 느낌을 느낀 후에 긴장하며 달렸다. 내 몸이 내게 하고싶은 말이 있는지 들으려 애쓰는 것은 생존과 나를 살게 하는 내 몸의 가볍지만 진솔한 대화였다. 목표한 키로수를 완주하고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샤워를 했다. 바로 출근을 해야했기에 선풍기를 켠 상태로 화장대 앞에 서서 출근 준비를 하는데 허리 둘레와 가슴둘레에 물집이 잡혀있었다. 오돌토돌 잡힌 수많은 물집들이 내게 항의를 하고 있었다. 너무 힘들었다고.
8월은 7월보다 나을 것 같았다. 비가 예보된 날도 더 많았고 7월의 불볕더위 아래에서 그래도 매일 뛰다보니 기온에 적응이 된 상태여서 고조되어 가는 8월도 어느정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7,8월의 더위에 오전 9시와 10시 사이 러닝을 하는 나는 나도 모르게 무언가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그것은 '핑계대지 않는 법'이었다. 아무도 내게 러닝을 시키지 않았고, 매일의 5km와 한달의 100km를 채우지 않는다고 하여 누구도 내게 이야기 하는 이가 없었지만 나는 그저 착실히 나의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 시간동안 나는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았고, 그 온도를 온 몸으로 받아냈고, 나뭇잎이 어떻게 영글고 색이 바뀌어 가는지, 새들이 어디서 어디로 날아가는지, 공기의 냄새와 습도는 어떻게 바뀌는지 조금씩 관찰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다리와 내 숨소리와 내 시선과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의미였다.
나는 3km정도부터는 몸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초반에는 페이스가 엉망이라는 것도, 그래서 주변을 못보고 약간 찡그린 상태로 달리고 있을 거라는 것도, 어느정도 달리며 몸과 마음과 호흡이 익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양손의 엄지를 펴고 달리는 자세를 취한다는 것도, 왼쪽 무릎이 부담이 되면 허벅지에 힘을 실어본다. 그러면 무언가 짐을 나눠지는 느낌이 든다. 완벽한 칼발이라 신발 사이즈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러닝화의 다양한 기능성이 곧 내게 다 맞춤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깅 발톱을 양쪽에 겪고 깨달았다.
길은 불안하다.
러너의 신체가 향상되는 이유는 울퉁불퉁함은 기본이며 덧붙여 갖가지 변수를 가진 길을 오로지 러너의 신체와 시각으로 달리게 하는 그 협응능력이 발전함에 있다. 하지만 계절과 날씨를 따라 길을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된다. 내가 달리는 것이 아니라 길이 나를 받아주고 있다는 것을. 아주 숨이 차거나 종아리 또는 무릎이 아플 때 그래도 계속 달릴 때 내 발이 내딛혀지는 그 길을 본 적이 있는가. 또는 하늘을, 또는 새들을. 그때는 내가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길은 '이래도? 이런데도?' 라며 내가 내딛는 한발 한발 앞으로 그들의 세상을 열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그러다보면 '어디까지 가볼건데?' 라고 질문하는 그 길의 무심하고 평온한 품을 느낄 수 있다.
엄마는 내게 생의 비밀을 단 한번도 논의하거나 알려준 적이 없었다.
이제 이 나이를 먹으니 생에는 비밀도 답도 없다는 것을 알겠다.
삶의 대부분의 사실과 정서를 꽁꽁 숨기고 엄마가 얻은 것은, 또는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길은 불안하다. 삶도 그러하리라.
그 불안함 앞에 성큼성큼 발을 내딛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