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ctory Liner: 필리핀의 길 위에서

그림이 있는 필리핀 문화 이야기

by 짜이온

필리핀의 버스는 한국에서 수입된 중고차로 시작된다. 붉고 노란색이 칠해진 차체 위로 ‘Victory Liner’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이름처럼 이 버스는 여전히 누군가의 여행을 담담하게 이겨내며 달린다.

처음 필리핀에 정착했을 무렵, 우리 가정은 차가 없었다. 그래서 고속버스를 자주 탔다. 딸락에서 마닐라까지 이동시간은 약 4시간을 잡고 이동해야 했다. 승용차로 1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도 2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휴게소에 정차하고, 사람을 기다리고, 막히는 길 위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에어컨 버스는 특히나 강했다. 땀을 식히기엔 좋았지만, 긴팔 옷이 없으면 한 시간도 버티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늘 긴소매를 챙겼다. 필리핀의 태양 아래서 땀을 흘리다가도, 버스 안에서는 가늘게 떨곤 했으니까.

버스 안에서는 영화를 틀어준다. 오래된 액션영화나 코미디가 반복된다.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화면 속 인물들이 웃으면 승객들이 따라 웃게 되었다. 버스는 그렇게 사람들의 시간과 표정을 데리고 움직인다.

불편함도 많았지만, 결국 마닐라 안에서 가장 편한 교통수단은 버스였다. 전용 터미널에 도착하면, 매표소가 있고, 정해진 시간에 버스가 떠난다. 혼잡한 마닐라 교통 속에서 그 규칙적인 출발이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버스는 여전히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나도 다시 그 버스를 탈 일이 생기겠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장, 집, 사람들… 그 풍경들이 어쩌면 나의 필리핀 기억의 한 조각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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