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악함과 약함
양쪽이 어느 한쪽도 양보할 수가 없다. 그들은 -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모두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하다. 인간의 가장 약하고 악한 면을 다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 천년을 헤매었고 그리고 그 헤맨 시간을 팔레스타인에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한 고위 정치가, 관리가 그렇게 말했단다. 돈을 줄 테니 나가라고 말이다. 인지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그들이 당했던 과거를 그대로 팔레스타인에 요구하고 있다. 폭력 가정의 아들이 커서 폭력 가장이 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묘가 있다. 한쪽은 유대인의 성지이고 반대쪽은 이슬람의 성지, 그렇게 나누어 서로 마주 본다. 그들이 이렇게 대놓고 형제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너무 놀랍고 아이러니했다. 사실 현실에서는 형제끼리 잘 싸우 긴 한다.
이브라함의 묘에 갔다. 듣던 대로 특이한 공간이었다. 근데 하필 간 날이 일 년에 10일만 개방된다는 유대인의 특별한 휴일이었다. 부르는 이름은 잊어버렸다. 우리가 탔던 택시는 묘로 가던 길을 10분 정도 남겨 놓고 로터리에서 저지당했다. 더 이상 개인 차량의 진입은 불가하고 셔틀버스를 타야 된단다. 이스라엘인이지만 아랍인이자 무슬림인 우리 기사는 이스라엘 경찰과 용감하게? 좀 과격하게 싸웠다. 우린 이 길로 가야 된다고. 아예 차에서 내려서 큰 목소리로 싸웠다. 이스라엘 경찰은 바디캠을 단호하게 들어서 우리 기사 눈앞에 갖다 댔다. 마치 총을 겨누듯이. 그래도 막무가내로 우리 기사는 싸웠고 오히려 우리가 말렸다. 무서워서. 화가 안 풀렸는지 말한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이스라엘인이지만 아랍 민족이니 저런 통제를 좋게 보지 않았다.
결국 정통 유대인 사이에서 - 납작한 모자, 꼬불꼬불한 수염을 달고 있는 - 셔틀버스를 탔다. 70년대 우리나라 시장판 같이 무질서하고 새치기, 밀치기가 난리도 아닌 와중에 몇몇의 시선을 받으면서 묘로 간다는 21번 버스를 탔다. 초등 2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유대인이 대놓고 뚫어져라 계속 쳐다봤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봤다는 듯이. 콩나물 버스에서 내렸더니 예상했던 대로 무수한 인파가 있었다. 그리고 숨 막히는 인파 속에서 겨우 길을 찾아서 입구를 통과하고 드디어 입장 직전이다.
이스라엘 군인 : what' your religion?
일행 : (자신 없는 목소리) Christian? (그나마 괜찮은 대답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군인 : Then, you can't gei in. Come tomorrow.
나 : um, well..actually... we're not Christian. (아예 종교는 없는 게 나은가 보다 생각하고)
이스라엘 군인 : Are you Jewish?
나 : No..
내일 오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나왔다.
"Today's our final day..."
정말 난감했다. 저 멀리 사막에서 3시간을 타고 좀 무서워 보이는 팔레스타인 국경을 통과하고 경찰이랑 싸우고 인파를 뚫고 파묻혀서 줄을 서서 이제사 왔는데 못 들어간다니. 이게 진짜일리 없어.
마지막 날이라는 말이 먹혔다.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여자 군인을 불렀다. 얘들 사진이나 좀 찍고 그대로 입구로 다시 나오게 해서 저쪽으로 내보내라고 지시했다. 갑자기 프리패스로 통과.
너무 정신없이 훅훅 지나갔다. 그 와중에 일행은 대담하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 나는 간이 작아서 고프로든 핸드폰이든 꺼내지도 못했다. 몇 번이나 유대인 신자들이 와서 사진 찍지 말라고 했으나 여자 군인이 눈빛과 손짓으로 쫓아냈다. 비극적인 현장을 확인은 했지만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중에 내 기억 속에서 다시 확인하자 혹은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로? 생각하고 훅 돌고 나왔다.
돌아가는 과정은 더욱 막막했다. 막판이라 방문했던 사람들이 모두 길바닥에 쏟아져 나와 있었다. 버스는 여러 대가 지나다녔으나 어느 버스가 내 버스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알았어도 탈 수도 없었다. 타국에서 그것도 총 들고 다니는 군인들이 있는 나라에서 어깨빵을 하고 뚫고 차를 타기도 어려웠다.
군인에 이어 다시 한번 은인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경찰이다.
"Where are you from? How are you going to go back?"
"21 bus?"
이 전쟁통 같은 상황에서 그저 21번 버스라고만 어리버리하게 말하니 기가 차 했다. 너희는 여기서 이래서는 못 나가라고 생각하는 표정. 저 쪽에서 좀 기다리라고 했다. 바빠진 경찰은 한동안 사라졌고 그 사이에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버스에 몰려가서 한 번 껴보기도 하고 빈 버스를 두드려 보기도 하고 고군분투했다. 모두 어림없는 실패. 그 경찰이 다시 왔다. 정류장 가기 전의 21번 버스 문을 열게 해서 우리를 어디에 내려주라고 해줬다. 그리곤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전에 사라졌다. 창가에서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은 이 난리통에서 다른 차량 통제하면서 기사랑 싸우는 모습이었다. 전쟁 피난 가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우리 기사와 겨우겨우 상봉해서 공항으로 향했고 귀국행 비행기를 무사히 탔다.
우리나라 와서 며칠이 지나 전쟁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자칫하면 전쟁에 휘말릴 뻔했나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이스라엘 사람들도 모두 휘말린 이 상황이 다녀온 지 며칠 되어서 그런지 그들이 받을 고통이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2 천년을 핍박받는 동안 유대인들의 맘 속에 얼마나 큰 고통이 그들에게 새겨져 있을까.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터키, 영국 등 수백 년의 식민지, 이번에는 아예 쫓아내려고 한다. 당하고만 살았던 불우한 친구 두 명이 피 터지게 싸운다. 요르단 가까운 Negev 사막에서 팔레스타인 쪽으로 넘어왔을 때 확연히 느껴졌다. 여기는 확실히 아름답고 사람이 살만한 땅이구나. 아예 다른 데로 가지 않는 한 싸울 만도 하겠구나.
인간의 약함과 악함 - 두려움에 굴복해서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가장 악랄하게 서로를 괴롭힌다. 우리나라랑 닮았단 생각도 많이 들었다. 영광도 있지만 상처가 많은 역사. 작은 나라. 주변의 거친 나라들. 문화적 종교적 자존심은 높고.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매사 애쓴다. 그런 불안함, 두려움이 오늘날의 부를 이루게 하기도 했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마지막에 우리를 끝까지 태워 준 기사님에게 연락을 해봤다. 모든 것이 올 스탑이라 한다. 일도 없고 삶도 없다는 표현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이 빨리 끝나길 바란다고 했다. 사실 종교도 애매한 나이지만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뭐라 해 줄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