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벗어나서 나에게 주는 위로
우리는 언제까지 타인의 관심이 필요한가. 유년기의 생존에 의한 필요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러면 성인이 되면 없어져야 하는데. 유전자에 깊게 새겨진 건지 외로움, 소외감, 박탈감 등 관계에서 생긴 고통들이 너무 먾다. 정신과 의사들도 말하길 수백 건 상담을 해봐도 대부분 관계에서 오는 문제라고 한다. 암을 정복하는 약이 만들어진 것처럼 관계 문제도 뭔가 끝장을 내는 약 - 사상이든, 진짜 약이든, 상담기법이든, 철학이든, 교육이든 - 이 만들어지면 어떨까. 그러면 치매약, 탈모약, 비만약보다 더 큰 혜택이 있을 텐데 말이다.
톨레가 말했다. 결국 자아 놀이, 자아의 환상이라고 말이다. 관계는 그 자아 놀이의 가장 대표적인 영역이 아닐까. 맨날 중독돼서 하는. sns도 결국 자아 과시용이다. 자아를 과시하려면 대상이 있어야 하고 대상은 곧 관계를 만들어 낸다.
톨레의 사상을 곱씹고 불교 사상을 매번 소환해도 어느 날 친구에게 상처받고,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서운해 한다. 누군가 나에게 예상치 않은 곳에서 마상을 남기고야 마는 건 시시때때로 있는 일이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보자. 톨레가 한 발 물러나서 뒤에서 나 자신을 보라고 했다. 그러면 그 뒤의 존재가 느껴질 거라고. 봄날에 잠시 볼을 스쳐가는 바람 같이 말이다. 그리고 그 바람이 점점 잦아지고 점점 오래 머물 거라고. 현재에 집중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한다.
때론 현재에 집중하는 의식을 해 본다. 일상의 공간에서 소리가 들린다. 옆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 도시의 공사소리, 그리고 주변을 돌아본다. 그리고 자아에서 벗어나서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자아의 과거와 미래의 시간, 감정과 걱정에서 분리되어서 똑같은 세상이지만 내가 분리되어 있는 새로운 세상을 잠시 경험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맞는 건지는 모르지만 이런 방법들이 위안을 주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