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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가 이영재 Jul 09. 2018

작은 것과 적정한 것

작은집 #6

6. 작은 것과 적정한 것


소인국 릴리펏(Lilliput), 거인국 브롭딩낵(Brobdingnag), 천공의 성 라퓨타(Laputa) 그리고 말의 나라 휘늠(Houyhnhnm) 에서의 기이한 경험을 다룬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1726)는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거친 장편 풍자 소설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 소인국과 거인국 만으로 읽었던 흥미로운 동화와는 전달하려는 내용이 다소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걸리버가 여행 하게 되는 네 곳을 우화라는 독특한 수사를 빌어 상황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고찰하고 있다.


작다는 것은 관점의 문제다. 지금 여러 차례 이야기 되고 있는 이 『작은 집』이라는 것 또한 걸리버 처럼 관점이라는 위치에서 보면 지칭도 의미도 개인적인 문제에 해당한다.

3평, 4평이 작은 집이 수도 있고 10평이 작은 집일 수도 있다. 제이 세퍼나 다카무라 토모야 처럼 혼자라면 4평이면 충분 할 수도 있다. 르 꼬르뷔지에는 4평의 집을 두고 작은 궁전이라 불렀다. 작은 것과 궁전은 의미적으로는 상충한다. 가족이 있다면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14평 오두막도 작을 수 있다. 주말 주택이 아니라 평생 거주해야 하는 곳이라면 그 크기가 때에 따라서는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기에 부족할 수도 있다.


조건과 무관하게 모두에게 치수로 한정하는 작은 집을 권하지는 않는다. 편차를 감안한다면 지금까지 불러왔던 작은 집에 적정한 집의 의미를 부가하는 것이 좋다.


작은 집 + 적정한 집


작다는 기준과 더불어 건축가와 함께 개인적인 적정한 기준을 세워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정한 기준은 물리적, 경제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융통성이 보장되는 내가 원하는 집의 기준이 될 것이고, 설정한 기준으로 평가하고 부족한 것은 대안을 가지면 좋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집들을 관찰해보자.

가령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다층 단독 협소주택을 보면, 제한된 좁은 대지에 각 방들은 수직으로 나눠져 물리적, 경제적으로는 적정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나이가 먹어갈 수록 오르내리는 것이 힘에 부칠 수 있다면 이것은 시간적으로는 적절한 융통성을 가졌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대안의 한 방법으로 주생활공간과 보조적인 공간을 구분하는 공간 구성이 된다면 더 좋은 집이 될 것이다.

현재 가족 수에 맞춘 면적이 어쩔수 없이 커질 수 밖에 없는 넓은 집은 자녀의 성장과 분가로 인해 쓰이지 않는 공간이 생겨나고 관리비용이 부담되는 시기가 다가 올 것이다. 이 또한 시간적, 물리적으로 적정하다고 볼 수 없다면, 미리 공간을 다용도로 쓸수 있게 계획을 하고 면적을 줄이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재료나 공법에서도 마찬가지다. 흔히 사용하는 자재들이 당장에는 경제적일 수는 있어도 관리의 어려움이나 특별한 외부요인에 취약한 경우가 있다면 적정한 집으로 보긴 곤란하다. 문제점을 인식하였다면 앞으로 수없이 들어갈 비용까지 감안하여 재료와 공법을 선택할 것을 권한다.


적정한 집은 어렵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복되지만 결국 대안을 가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작고 싼 집'과 '작고 싸게 지은 집'을 구분해야 한다. 주변에는 터무니 없이 싼 가격만 강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흔히 면적대비 평당공사비로 설명된다.

개인적인 견해 이지만, 싼집과 싸게 지은 집을 이렇게 나눠볼 수 있다.

'싼 집'은 기능을 갖추고 있으나 쓰임새가 좋지 못하고 심미적인 면마저도 무시된 단지 규모나 구조적으로 작은 집이다. 집이라기 보다는 대피처에 가깝다. '싸게 지은 집'은 부동산 가치측면보다는 이 곳에서 영위할 사람들의 삶의 일부분이 건축적으로 잘 구현되고 꼭 필요한 공간으로 집약되어 적정한 비용으로 구현된 작은 집을 의미한다.


작은 집은 개인이 만들어 놓은 적정한 기준을 만족하고 싸게 지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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