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집 #5
때마침 흥미로운 TV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 어색하지만 재미있어 보이는 새로운 접근이다. 그들은 인적이 없을 듯한 한적한 장소에 지어진 작은 집에서 자유롭게 생활을 하는 모습을 담았다. 1편 프롤로그에서 이 프로그램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단 한줄로 설명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전기도 물도 자유롭게 주어지지 않는 오프그리드(off-grid)의 환경에서 참가자는 그들이 가져온 필수 생존품마저 덜어내고 어쩌면 반자발적 고립형태로 자유를 만끽한다. 현대 도시적 삶에 익숙했던 그들은 적응해 나가고 간간히 주어지는 미션을 해결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시청자는 그들을 관찰한다. 무료할 법한 이 장면들은 보면 볼 수록 빠져든다.
도시의 일상에 지친 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와 사계절을 보내며 엄마에게 배운 먹거리를 자급하며 삶을 깨우쳐 나가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는 듯 하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장면과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사소함이 가져다 주는 행복을 간접적으로 만끽하게 된다. 소소하지만 그 삶이 가져다 주는 작게 부서진 디테일에 주목할수록 행복감이 증가한다.
그리고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는 숲속의 작은집으로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이제는 그들이 즐기고 있는 작은 집을 보자. 우선 피실험자들에게 주어진 두 집은 목구조의 단순한 형태다. 뼈대를 세워 목재널을 붙이고 금속지붕과 천막을 뒤집어 씌운 지붕에 작은 창과 문을 달아놓은 것이 전부다. 휴양지에서 몇 일 머무를 때 빌려 사용했던 방갈로다. 면적은 6평 남짓 되어 보인다.
시계가 없다. 무의식중에도 가질 수 밖에 없는 시간이 주는 중압감을 제거 했다. 그리고 무한정으로 주어질 것 같았던 전기와 물의 사용에 제약을 주었다. 태양광 패널에서 주어지는 전기는 날씨가 흐리면 무용지물이다. 물은 고양이 세수를 해야 할만큼 넉넉하지 않다. 집 내부에는 화장실이 없다. 배수를 모으는 통을 하부에 넣어둔 싱크대는 벽난로와 함께 이 작은 집에서 가장 호사롭다. 하지만 수도꼭지는 없다. 물통에서 흘러 나오는 물을 사용해야 하고 그나마 충분치 않다. 간이 가스버너, 한 명분의 식기세트, 접이식 테이블 그리고 다락에 얹혀놓은 매트리스, 모든게 부족해 보였다.
부족해 보였던 이유는 우리가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방갈로에서도 그리고 가족과 함께 가끔 떠나보는 캠핑에서도 이 보다 많은 편의시설과 도구가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발적 고립이라는 단어를 이해 할 수 있다.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를 쓴 일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中村好文,1948년생)는 나가노현 미요타의 산기슭에 14평짜리 오두막을 짓는다. 이 집은 기존에 있던 7평 남짓 되는 집을 고치고 증축하여 만들었고, 렘 헛(lemm hut), 나그네쥐 오두막이라 불렀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자급자족형 주택을 실천하고 있다. 쉴새없이 무엇인가 필요에 의해 보완을 해야 하는 <일하게 되는 건물>, 그리고 그런 그를 위한 <일꾼을 위한 건축>이다. 그가 궁극으로 원했던 소박하면서도 풍요로운 집을 완성했다.
『집을, 순례하다.』, 『다시, 집을 순례하다.』, 『집을, 짓다.』등의 주택에 관련한 일련의 시리즈 책을 저술한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20세기 건축의 거장들이 설계한 30여채의 주택들을 7여년에 걸쳐 순례한다. 그리고 그 순례에서 빠뜨리지 않은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철저히 실용성을 추구했던 세이커 교도(청교도 일파)의 건축이었다. 교리에 의해 순수한 생활 형태를 고수했던 그들의 삶 속에 남아 있었던 주택을 탐구했다. 그리고 그는 책에서 오두막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 마야의 민가와 풍경에서의 감동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2011년)에서 겪었던 무력감은 오히려 집에 대한 초심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TV프로그램 "숲속의 작은 집"에서 나영석 PD는 '이 프로그램은 행복에 관한 실험 보고서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그네쥐 오두막'을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집의 개인적인 실험의 보고서라고 하였다. 이 둘 모두 작은 집에 대한 훌륭한 시도이고 소중한 보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