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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가 이영재 Jul 03. 2018

일본건축기행 2-2

구라시키 미관지구 (倉敷美観地区)-1

[ 1 일차 ] _ 박제되지 않은 도시 재생


오래된 정겨움이 남아있는 노란 열차는 20여분 남짓 달려 구라시키역에 도착했다. 쾌청한 봄 기운 날씨였지만 살짝 찬 바람이 불어오고 옅은 노란빛이 감도는 타일로 마감된 역사는 깨끗한 하늘 덕분인지 지방 소도시 답게 화려하지 않지만 기분 좋은 밝은 빛이다. 10분 정도 걷다보면 작은 운하의 시작인지 끝인지 첫 여행지의 기착인 구라시키미관지구 입구에 도착한다.

좌 : 구라시키역 / 우 : 구라시키미관지구로 가는 길에 만난 가족(유치원 졸업식이 있었다)


구라시키미관지구의 경관은 건축가 '나라무라 토우루(楢村 徹)' 를 중심으로 하는 6명의 건축가 모임인 구라시키재생공방(倉敷再生工房)에 의해서 1988년부터 진행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들은 '오래된 민가를 모던한 리빙으로!'  「古い民家をモダンリビングに!」 라는 테마로 30년간 수백 채에 이르는 민가를 재생해 왔다. 그들의 방법은 확실했다.


「 문화재 보수 공사와 같이 시간을 멈춘 보존이 아니라 민가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장점을 충분히 살려 새로운 기능과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는 방법으로 버려진 헛간과 창고, 일반적인 낡은 민가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현대주택으로 되살리고, 사용하면서 다음 시대에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민가를 재생하는 것이지만 전통적인 기술의 계승에도 도움이 된다.
재생된 민가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융합한 것으로, 신축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매력적인 현대주택으로 되살아 난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조합은 6명 건축가의 각기 다른 개성과 감성, 사고가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      _ http://kominka.main.jp/


구라시키 미관지구 핵심은 '사용하면서 다음 세대에게 남겨주는 것이며, 재생과 더불어 전통적인 기술을 계승하는 것' 이다. 문화재 복원이나 보수 처럼 시간을 고의적으로 멈춰두고 박제해 버리는 건물이나 도시는 무의미함을 시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 해 하나의 집 밖에 되살리지 못하더라도 30면이면 무려 서른채가 되고 시간이 지나면 살림집의 재생이 도시의 재생으로 이어질 것을 확신하고 서두르지 않고 진행을 이어왔다.


우리의 재생은 어떠한가. 구라시키미관지구의 사례를 통해 알수 있듯이 건축가들은 그 방법을 알고 있다. 오래된 것을 가감없이 지워내고 새로운 것이 호기롭게 우후죽순처럼 발길짓하듯 쏟아올라도 그 개발의 이득은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힘겹게 삶을 지속하는 이들도 혜택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모든 가치가 부동산이라는 가치에 한정하는 것이 결단코 정상은 아니다.
현재 진행되는 일부 재생사업은 지자체의 보여주기 쇼에 불과하다. 기존 수십년을 함께해 온 세입자들은 떠나야 하고 자본을 갖춘 새로운 계층이 점유하고 있다. 이들도 이 쇼의 마지막에는 모두 떠나야 할 것이다. 이처럼 다소 서투른 이유는 단시간 모든 것을 관행에 의해 바꿀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30년을 바라보지 못하는 재생은 박제와 다름없다.


나 또한 몇해 전 우습고 슬픈 현실을 경험했었다. 아이디어 공모가 있어 참여한 기억이다. 복원해 놓은 성곽을 건드리지 말고 안내소를 디자인하라는 주문이었으나, 복원해 놓은 성곽은 예전의 흔적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문화재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말 그대로 과거의 한 시점으로 되돌려놓은 모조품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상황이 안타까워 성곽에 구멍을 내고 안내소를 관통하도록 계획을 했다. 그리고 해외의 복원 사례를 보여주고 그리고 성곽의 과거와 현재를 재조명하여 특정할 수 없는 한 시점으로 국한 시켜놓은 복원이 결코 바람직하지 못했음을 토로했다.

참석한 심사위원들도 많은 부분 공감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뜻하지 않게 논쟁거리가 되어 한참을 방법적 대안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지침 위반으로 탈락이었다. 전에 들은바에 따르면 당선안으로 선정이 되었으나, 참석한 심사위원 중 문화재측 관계자가 선정 후 지침위반 사항(성곽을 훼손해야 하는 사항)에 대한 이의 제기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아예 지침 위반 탈락을 시켜고 재심사를 했다고 한다. 그럴 것으로 예상을 했었다. 그렇게 탈락 시키라고 제출했던 안이었다. 그것으로 이 복원의 문제가 국내에서 많은 제도적 허점을 가지고 있음을 얘기 하고 싶었었다.

구라시키미관지구 거리와 나카바시(中橋)


발걸음을 옮겨 숙소로 향했다.
첫 숙박지는 아이비 스퀘어(Ivy Square) 호텔 이다. 아이비로 뒤덮힌 붉은 벽돌의 건물은 옛 방적 공장을 호텔, 공방 등 복합 교류시설로 둔갑시켰다. 이른 아침 작업 시작전 조회나 맨손체조를 했을 법한 너른 광장을 품고, 광장의 둘레는 회랑이 갖춰져 있어 노동 집약의 산물이었던 방직과 방적의 공장이라고 하기에는 호사롭게 보였다. 오래전 노동자들이 광장이 있든, 회랑이 있든 어느 한 구석이 힘들지 않았을까만 하지만 먼지만 가득했을 내부를 벗어나 잠시라도 깨끗한 공기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노동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아이비 스퀘어 광장과 회랑
아이비 스퀘어 광장의 아치와 호텔 입구
호텔 게이트와 입구 캐노피


방적공장은 원래 대공간이다. 내부의 기계들만 정리하고 나면 넓직한 공간이 저절로 생겨난다. 이렇게 융통성 있는 공간은 재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건축물 내부의 공간에 융통성이라는 말을 얻어주는 건 다른이의 말을 차용한 것이다.
안도(安藤 忠雄-Tadao Ando)는 친환경 건축물을 설명함에 융통성이라는 말을 차용했다. 한가지 용도에 국한된 공간은 이후 그 공간이 다른 용도로서 쓰임이 없을 때 철거를 해야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폐기물과 신축되어지는 과정에서의 환경파괴는 이전 그 건축물이 어떠한 환경적 이점을 가졌다고 하여도 결코 친환경적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공간의 융통성이라는 것은 그 용도가 전용되어서도 쓰임이 지속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이비 스퀘어는 융통성을 갖췄다고 할 수 있겠다.


아이비 스퀘어의 내부 / 현재 일본산 데님을 판매 중이다


재사용되고 다음 세대에 넘겨주고 오랜된 살림집에서 시작된 여러 활동이 도시적 규모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건축물이 본질적으로 융통성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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