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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가 이영재 Jul 17. 2018

일본건축기행 1-5

동경(도쿄 Tokyo, 東京)-5

[ 2 일차 ] _ 전범기업의 저택


2017년 7월 더운 여름, 한국에서는 한편의 영화가 개봉을 하였다. 「군함도」 다. 일제 강점기 하시마탄광(端島炭鑛)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범기업 '미쓰비시(三菱, MITSUBISHI)'가 1890년에 해저탄광 개발을 목적으로 사들여 강제 징용한 수많은 조선인이 목숨을 잃은 가슴 아픈 장소다.

(좌) 군함도 영화 포스터 (우) 지옥섬이라 불리던 하시마섬


일본은 하시마 탄광을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선 일본 근대화를 뒷받침할 탄광'이라며 201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고, 2015년 7월 5일 하시마섬이 포함된 메이지(明治) 산업혁명유산이 결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하시마섬 등재 전까지 우리나라는 강제징용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선 안 된다며 반대 운동을 펼쳤다. 이후 한국과 일본은 일본 근대산업시설에서 의사에 반한 강제노동이 있었음(‘forced to work’)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에 명시키로 하고, 이들 시설의 유산 등재에 합의했다. 하지만 등재 이후 바로 일본은 ‘forced to work’라고 말한 것은 강제노동의 의미는 아니라며 입장을 바꿔 논란을 일으켰다.
| 하시마탄광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미쓰비시는 이와사키 야타로(岩崎 弥太郎,いわさき やたろう)에 의해 1873년 창립한 일본의 극우 기업이다. 정경유착으로 독점적 이익을 누린 것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제2차 서계대전 당시 군수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이와사키 야타로의 삶을 들여다보면 하급관직과 변변찮은 장사치를 오가는 던 자였으며,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라는 인물과 접점을 이루는 시기도 있었다. (*사카모토 료마는 다음에 다뤄볼 인물이다.) 목재상과 해운업으로 부를 축적한 이후 증기선 2척을 인수해 미쓰비시 상회를 설립하고 미쓰비시 그룹의 창립자 된다.

그런 자의 집안의 저택과 정원이 우에노 공원(上野公園) 남서측에 위치하고 있다. 구.이와사키저택정원(旧岩崎邸庭園)이 그것이다. 이 곳은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1년 개원하여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좌로부터 이와사키 야타로, 이와시키 히사야, 사카모토 료마

현재의 저택과 정원은 과거 이와사키 저택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1878년 이와사키 야타로가 번주였던 마키노스케시게(牧野弼成)로 부터 주택지를 구입하였고, 현존하는 서양관은 이와시키 히사야(岩崎久弥)에 의해 영국 출신의 건축가 조시아 콘도르(Josiah Conder)의 설계로 1896년 준공을 하게 된다. 히사야는 야타로의 아들이며 미쓰비시 그룹의 3대 총수다.


양옥(서양관)의 전면과 근현대건축자료관에서 바라본 서양관과 일본관(和館)

서양관과 나란히 일본관(和館) 이라는 명칭으로 일본식 전통 건축물이 배열 되어 있다. 메이지 시대 저택은 이처럼 서양관과 일본관을 별도로 만들고 서양관은 공적인 접객 공간인 영빈관으로 그리고 일본관은 일상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또한 1896년 완공되었으니 120년 가량 밖에 안되는 근대의 일본 전통 건축물이다.


양옥(서양관)의 후면, 우측 별채는 당구실이다. | 사진 : 석정민
서양관(양옥)은 공적 접객을 하던 영빈관이었다 | 사진 : 석정민

일본 전통 가옥을 봤을때 여러 면에서 디테일이 깔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눈이 가는 부분은 겉으로 들어나는 한옥으로 봤을땐 툇마루 같은 부분이다. 끝 마구리 부분에 목재로 가로막아 놓지 않고 한장이 고스란히 사용되어 정갈하다. 한옥보다 기술적인 문제에 있어 낫다기 보다는 한국과는 다른 목재의 성질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일본관(和館)의 외부 모습 | 사진 : 석정민
복도에서 정원쪽으로 열려있다 | 사진 : 석정민


그리고 당구실(撞球室) 별채가 있다. 양옥을 설계한 조시아 콘도르가 설계한 것으로 외관은 교창구조(校倉造)의 스위스 산장풍이고, 목조고딕양식이라  기록되어 있다.


교창구조와 목조고딕양식이라는 것은 좀 생소하다. 그래서 인터넷의 힘을 빌어 '교창'을 보니 동북아시아권에 나타났으며, 그 형식이 서주하여 유럽권역으로 전해졌고 기독교 건축에서 독특하게 발전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교창은 통목이든 각목이든 적층하여 쌓은 형태를 말하는데 가옥 뿐만아니라 능(陵)의 목곽에서도 나타난다. 아마도 통목에서 사각의 각목 그리고 삼각형 단면의 각목으로 발전하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 신라의 고분에서 나타나는 곽실은 시베리아에서 유래된게 아니라 독특한 묘제(墓制)라 밝히고 있는 글이 있는 것으로 봐선 전파의 경로가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면 예상컨데 문화적 전파 보다는 목재를 묘나 주거에 활용한 지역의 자생적 형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재료의 하이브리드를 이루기 전 목재로만 적층하였다면, 그리고 집을 짓는다는 문화적 시점까지 도달하였다면 적층이 무슨 대수였을까.


당구실 내부를 보기 위해서는 별도의 예약이 필요하다. 하지만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전범집안의 위락이 나에게 어떤 위안이 되겠는가. 그냥 교창구조라고 하니 외형만 훌터보자. 대마도 걸고 한판이라면 모를까. 저 전범의 화려한 집이 어느 누구의 피와 땀이 였나. 그다지 기분이 좋지 못하다. 기념 스탬프 마저도 그냥 내려놓았다.


교창(校倉)
3각형 단면의 나무를 옆으로 쌓고 짜서 벽을 만들고 지붕을 한 창고를 말한다. 옛날에는 갑창(甲倉)이라고 불렀고 제1급 창고를 뜻하며 때로는 우창(又倉)이라 한 적도 있다. 또 통나무를 쓴 환목창, 널판을 사용한 판창, 각목을 사용한 것도 같은 교창계통 구조에 속한다. 교창계 주거와 창고는 우리나라 동부 · 북부 · 중국 동북구지역 북부에서 시베리아 대륙 대산림지대, 중앙아시아를 거쳐 히말라야 산맥을 동주하고 또 한편으로는 서주하여 카스피해, 흑해 주변에 퍼져 유럽의 스위스 독일 등까지 미쳤다. 또 러시아 북부에서 스웨덴, 노르웨이 북부에 이르러서는 특이한 기독교 교회 건축에까지 발전하였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 산립지역에도 있고 아마도 시베리아에서 일찍이 유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서는 전한시대의 정건루(井乾樓)가 교창조이고 전한 이전 묘실의 목곽(木槨)도 교창의 구조와 연관한다.
(미술대사전(용어편), 한국사전연구사)
당구실(撞球室/사진:석정민) 별채와 교창구조 |  스탬프도 찍으려 했다 내려놓았다. 그냥 스탬프를 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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