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지 않기엔 여전히 우리는 젊다 (1/6)
나의 첫 러닝은 2017년 5월 29일 오전, 뚝섬한강공원을 뛰며 시작되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러닝을 시작한 지 벌써 1년.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 이유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 오늘부터 러닝할 거야." 하며 마치 프로 마라토너가 될 것처럼 떠들어댔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나의 다짐과 포부를 듣고는 하나 같이 이렇게 말했다. 운동도 싫어하는 네가 무슨 러닝이냐고.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는 어릴 적부터 운동과 거리가 멀었다. 그 흔한 구기 종목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 따라 등록한 태권도 학원은 이틀 만에 울면서 뛰쳐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최근까지 오래 즐겼던 운동은 테니스였는데, 그마저도 1년간 '즐겼다'기보다 '배웠다'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땀 흘리기 싫다는 이유로 횡단보도 신호등이 깜빡이면 절대 건너지 않고, 몇 분이 걸리든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 그게 나라고(It's me).
러닝을 왜 시작하게 됐어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 나에게 취미를 물으면 자연스레 러닝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내 취미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러닝이 뭐예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뛰는 게 취미예요?" 정도. 지금껏 러닝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을 살펴본 결과 그 사람들은 절대 러닝의 뜻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혹시 내가 '러닝'이라고 영어로 말해서 그런 걸까, 싶어서 '달리기'라고도 말해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똑같았다. 결국 러닝을 취미로 말하는 사람이 드물어서, 단순히 생소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와 달리 "뛰는 게 취미예요?"라고 묻는 사람들은 '왜' 뛰느냐에 집중한다. 시간 날 때 넷플릭스로 좋아하는 미드를 볼 수도 있고, 카페에 가서 책을 읽을 수도 있는데 왜 취미가 러닝이 되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사실 1년 전만 해도 내가 그랬다. 달리는 것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생이라면 1교시 출석 체크를 위해서 뛴다거나,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면 쫓아오는 동네 강아지를 피하고자 뛰는 것처럼 작더라도 그럴싸한 이유. 근데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무작정 뛰는 게 취미라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작년 5월,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나는 러닝에 관심을 가졌을까. 당시에 나는 늘어나는 뱃살과 무거워지는 몸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카페 알바를 하는 휴학생이라 규칙적인 생활은 물 건너간 지 오래였고, 그나마 하는 운동이라고는 일주일에 두 번 받는 테니스 레슨이었다. 카페 사장님, 그리고 동네 친구와 함께 즐기는 테니스도 물론 재밌었지만 아무리 배워도 크게 늘지 않는 실력과 테니스 코트가 필요하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운동을 찾기 시작했다.
(1) 혼자서도 즐길 수 있을 것
(2)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적을 것
(3) 언제 그만둘지 모르니 초기 투자가 적을 것
기준이 그렇게 빡빡한 것도 아닌데, 이것저것 따져보니 선택지가 크지 않았다. 예상했듯 러닝과 헬스 사이에서 수차례 고민했고, 지금껏 헬스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3번 기준에 걸맞다는 이유로 러닝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그냥 달리는 건데, 돈 들어갈 데가 어디 있겠어?'라고 말했던 1년 전으로 돌아가 나의 뺨을 적당히 어루만지고 싶다. (알고 보니 나에게는 장비병(장비가 필요한 취미에서 지나치게 필요 이상으로 장비에 집착하거나 장비를 사기 위해서 과소비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라는 치명적인 병이 있었다.)
뛰는 게 왜 좋아요?
지금 되돌아보면 '왜' 러닝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꽤 명쾌했다. 하지만 "뛰는 게 취미예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저 답변이 딱 반쪽짜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왜' 꾸준히 뛰어왔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성격상 고민과 걱정을 달고 사는 나에게는 조금이라도 머리가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휴학 중이던 작년의 나는 휴학생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걱정들, 예를 들자면 휴학을 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에 대한 걱정부터 복학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자괴감 등 수많은 생각이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러한 고민과 걱정들은 내 머리를 단 한 순간도 쉬지 못하게 괴롭혔는데, 첫 러닝이 끝나자마자 그 처방이 러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9분 16초간 뛰며 점점 지쳐가는 몸과 달리 머리만큼은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앞으로 가고자 두 다리를 길게 뻗는 단순한 동작의 반복. 그러한 반복이 지루하지 않게끔 만들어주는 신나는 음악과 멋진 시야. 버스와 지하철로 지나던 길을 내 두 발로 뛰고 있을 때의 쾌감. 지금껏 가보지 못했던 동네 구석구석을 뛰면서 나만의 루트를 정복하는 재미. 이러한 러닝의 매력은 눈 감고 딱 다섯 번만 뛰어보면 안다. 여기에 다른 러너들과 함께 뛰는 재미까지 맛보면 금상첨화. 그렇게 나는 1년 동안 러닝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는커녕 점점 더 빠져들고 있음을 느꼈다.
지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121번의 러닝으로 643.3km를 달렸지만, 앞으로도 수많은 고민과 걱정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기에 절대 잊지 말자. 달리지 않기엔 여전히 우리는 젊다.
나에게 왜, 달리냐고 물었다. (현재글)
나에게 어떻게, 달리냐고 물었다.
나에게 무엇을, 달리냐고 물었다.
나에게 어디서, 달리냐고 물었다.
나에게 언제, 달리냐고 물었다.
나에게 누가, 달리냐고 물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