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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numsa Aug 09. 2024

분위기가 이상해요

큰딸 유나가 4학년이 되어 파자마 파티를 했다. 3학년 때 친구 집에서 한번 할 기회가 있었는데 잘 안 되어 8시에 돌아온 일이 있었고 이번에는 우리 집에 친구가 놀러와서 자기로 했다.
 7시쯤에 간식으로 피자를 시켜 먹었다. 본격적으로 놀기에 앞서 피자를 먹으며 감정과 본심 나누기를 하였다. 큰딸 유나와 작은딸 지민이는 매주 연습을 하는데 놀러온 유나 친구는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돌아가면서 감정을 3개씩 말하는데 친구가
 “밤샘 하고 싶어요.”라고 하자 지민이가 “그건 감정이 아니잖아.” 하였다.
 내가 “밤샘 하고 싶어서 기대되겠구나. 기대된다고 말해 봐.” 하였다.
 그러고 지금 진짜 원하는 것이 뭔지 말하기를 했는데 3명이 모두 “밤샘 하고 싶어요.”라고 하였다. 나는 아무리 파자마 파티라도 아이들이 10시쯤에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희가 밤샘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걱정되고 부담스럽고 긴장이 되는구나. 내가 진짜 바라는 건 너희가 놀 만큼 놀고 내일 아침 일정에 지장이 없을 만큼 자는 거야.”
 “아빠는 걱정되고 부담스럽고 긴장이 되는군요. 그럼 우리는 1시까지 놀게요. 8시에 일어나면 7시간은 잘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렇게 해서 1시까지 놀기로 약속했다. 밤샘하자는 아이들에게 “안 돼. 늦어도 12시에는 자야지.” 했어도 1시쯤에 자는 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약속을 하니 얼마나 귀여운지.
 그런데 문제는 우리 큰딸 유나였다. 원래부터 욕심이 많아서 동생이 뭔가 하면 질투가 폭발하고, 동생이 뭔가 가지면 자기도 똑같이 가지려 하고, 놀이나 게임을 할 때 늘 동생을 이기려 들 뿐만 아니라 교묘하게 말로 속여서 자기가 유리한 결과만 얻으려고 하는 녀석이다. 친구한테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친구는 유나랑 같이 놀고 싶었는데 유나는 신데렐라 영화가 보고 싶었는지 그걸 틀어서 동생이랑 셋이 보기 시작했다. 동생이랑 친구는 재미가 없어서 돌아다니면서 놀 거리를 찾는데 자기는 혼자서 끝까지 영화를 보았다. 엄마가 친구를 초대해 놓고 뭐하는 거냐며 걱정을 하길래 나는 일단 지켜보자고 했다. 아이들이 문제를 겪고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경험을 좀 하게 해 주고 싶었다.
 영화가 끝나자 잠자리를 배정하는데 유나 침대에 유나가, 동생 침대에 친구가 자고, 동생 지민이는 바닥에 요를 깔고 자기로 했다. 그런데 바닥에 까는 요는 유나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유나는 자기 침대도 포기하기 싫고, 동생이 잠잘 바닥 자리도 탐나고 해서 혼자 어쩔 줄을 몰라 눈물을 흘리며 삐지고 말았다. 친구랑 동생은 눈치를 보다가 그냥 둘이서 놀 거리를 찾아 놀고 있었다. 유나는 혼자 침대에 누워있다가 또 영화를 틀었다. 엄마는 유나가 저러고 있는데도 친구가 나쁜 말도 안 하고 동생이랑 놀아주니 친구가 참 마음이 순하다고 칭찬을 했다.
 잠시 후에 보니 보드게임을 하는데 그제야 유나도 끼어서 3명이 모였다. 친구는 ‘다빈치코드’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유나가 부득부득 우겨서 ‘루미큐브’를 하게 되었다. 친구는 루미큐브에 자신이 없어서 시큰둥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게임도 잘 안 풀려서 패를 좀처럼 내려놓지 못했고 유나는 자기가 잘하는 게임이라서 제대로 신이 났다. 이쯤 되니 마음이 순한 친구도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게임판은 살얼음판이 되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숫자 패만 맞추며 꾸역꾸역 판을 끝냈다. 엄마는 파자마 파티 한 번 하고 친구 사이에 금이 가겠다고 걱정했다. 나는 이것도 유나가 겪어야 할 인생 경험이라 생각하자고 말했다.
 이제 게임도 시시해졌으니 풀이 죽어서 잠이나 자겠지, 하면서 속으로 좋아하고 있었는데 아이들 3명이 안방으로 찾아왔다.
 “보드게임을 했는데 분위기가 이상해요.”
 서로 할퀴고 싸운 것은 아니지만 각자 삐져서 대화를 하고 싶지도 않고 이 밤에 집에 돌아갈 수도 없고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다 못해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다.
 “그럴 땐 방법이 있지.”
하고 우리 집에 있는 감정카드 세트를 꺼냈다.
 “자 여기 있는 카드에서 지금 기분에 해당하는 걸 최대한 많이 골라 보렴.”
아이들은 속상하다, 섭섭하다, 답답하다, 서럽다, 어색하다, 화나다 등을 고르더니 순식간에
 “지금은 상쾌하고 신나고 재미있어요.” 하면서 상쾌하다, 신나다, 재미있다 카드를 모으기 시작했다.
 원래는 카드를 10장 정도 모으면 돌아가면서 기분을 말하고 아까 어떨 때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말하고, 상대의 감정을 따라 말해 주고, 그 말을 들은 나의 지금 기분을 표현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쁘다 홀가분하다 만족하다 등등 감정 카드가 동이 날 정도로 카드를 계속 모으고 있었다. 각자 카드가 산더미처럼 모이는 동안에
 “왜 갑자기 분위기가 다시 좋아졌지?”하면서 서로 즐겁게 대화를 시작했다.
 결국 카드 모으기는 끝났고
 “감정 카드 찾기 시작할 때는 기분이 속상하고 섭섭하고 답답했는데 지금은 신나고 재미있고 즐겁다는 말이구나?”
 “네.”
 “이제 정리하고 다른 놀이할까?”
 “네.”
 “아까처럼 분위기가 이상해지지 않으려면 서로 ‘양보’를 하면서 놀아야 돼. 양보가 무슨 뜻인지 알지? 특히 유나 네가 제일 양보해야 된다.”
 “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베개 싸움을 하러 들어가고 나는 카드를 정리하고 이 글을 쓰러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이들은 베개 싸움도 하고 진실 게임도 하고 무서운 얘기도 하고 몸으로 말해요도 하다가 2시 30분에 겨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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