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국어 시간에 책읽기를 한다. 읽기 능력은 많이 읽어야 느는데 남는 시간에 자발적으로 책을 읽는 학생들이 별로 없으니 수업 시간에라도 읽혀야겠다 싶었다. 처음 아이디어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국어 선생님이 제시하였고 지난 겨울 방학 동안 국어과 선생님이 함께 준비하였다. 매주 한 시간은 국어 교과서 대신 각자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시간으로 진행하였다.
’독서 습관 기르기, 감수성 기르기, 독서 토론 문화 정착, 배경 지식 습득, 읽는 힘 기르기’ 등 여러 가지를 의도하고 준비한 수업이었다. 그래서 5월에는 그동안 읽은 책으로 한달 내내 독서 토론 수업도 하고 서평쓰기 수업도 하였다. 토론과 서평은 교과서의 단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교과서 수업과 책 읽기 수업이 별개가 아니라 결국 ‘국어’라는 교과 안에서 하나로 이어짐을 보여줄 수 있었다.
7월이 되었다. 점심 시간에 우리 반에 가서 아이들 노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몇 명의 아이들이 김려령의 ‘가시고백’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놔두고 딴 여자 만나는 아빠가 뭐가 불쌍해.”
”사랑도 안 하는 여자랑 억지로 같이 살아야 해?”
”아내를 버린 거지 딸을 버린 건 아니지. 그래도 딸은 사랑하잖아.”
”다 자업자득이야.”
’가시고백’에 나오는 지란의 친아빠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잘못으로 부인과 이혼한 후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로워하는 ‘허 씨’를 동정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주제인 듯하였다. 그리고는,
”우리 이걸로도 토론해 봤으면 좋겠다.”
”그래 맞아.” 하였다.
책을 읽고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가치관에 대해 토론하는 분위기가 점차 자리잡혀 가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그리고 기말고사 전 마지막 시간. 마침 책 읽는 시간이어서 마지막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습은 시키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라고 하였다. 한참 조용히 책을 읽는데 교탁 바로 앞에 앉은 아이가 갑자기 눈물을 뚝 흘렸다.
”왜 울어?”
”이야기가 너무 슬퍼서요.”
”무슨 책인데?”
”두근두근 내 인생이요.”
하면서 표지를 보여주는데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었다.
한창 감수성이 형성될 중학교 시절에 읽은 책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수업 시간에 책 읽기는, 고등학교 가면 책을 읽을 시간은 더더욱 없다는 걸 알기에 억지로라도 읽히려고 준비한 활동인데, 한 학기가 끝나가는 지금, 정말 잘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업이 시작되면 다들 책을 한 권 골라 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한다. 나도 말없이 교탁 앞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가끔 고개를 들어 30여 명의 아이들이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한 마음이 든다. 책을 읽을 때만이라도 시험과 성적에 대한 걱정, 친구나 선생님과의 갈등,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잊고 온전히 자기만의 세계를 누릴 수 있게 해 주고 싶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책 읽기 활동을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설문조사를 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