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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numsa Mar 17. 2019

[육아] 논리적 동일성


연아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연아: 아기는 머 베고 자?
아빠: 팔 베고.
연아: 누구 팔이야?
아빠: 아기 팔.
연아: 아니야 엄마 팔이야.
아빠: 아니야 엄마는 없어. 
연아: 엄마 어디 갔는데?
아빠: 굴 따러 갔지.
연아: 엄마 언제 와?
아빠: 굴 다 따면 온다.
연아: 굴 다 땄어?
아빠: 아니 다 안 땄는데 돌아온대
연아: 왜?
아빠: 아기 걱정 돼서.
연아: 어디에서?
아빠: 모랫길에서.
연아: 아니 어디에 나오냐고.
아빠: 잘 봐.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연아: 그 엄마는 누군데?
아빠: 아기 엄마
연아: 누구 아기?
아빠: 팔 베고 자는 아기.
연아: 아니잖아.
아빠: 아니야 이 엄마가 굴 따러 간 엄마 맞아.
연아: 그 엄마 맞아? 이 엄마가 그 엄마야?
아빠: 맞다니까.


  1절의 엄마와 2절의 엄마가 같은 엄마인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텍스트성. 사실 이건 논리학에 속하는 영역이라기 보다는 화용론이나 담화론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대규 선생님은 논리학의 삼단논법이 정글 속의 원주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는데, 진중권의 글을 인용한 이 글( http://news.joins.com/article/22262967 )에서는 삼단논법은 배워야하는 것으로 적혀 있다.

일상에서 쓰는 삼단논법도 이곳 사람들에겐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북극의 곰은 모두 하얗습니다. 노바야제믈랴 지방은 북극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노바야제믈랴에 사는 곰은 무슨 색일까요” 하고 물으면 우리는 바로 “흰색”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문맹인 사람들은 “글쎄요, 저는 하얀 곰을 한 번도 본적이 없네요” 식으로 말한다는 거죠.

  위의 내용은 정확한 출처를 밝히려고 일부러 검색해 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를,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문명인의 이성 중심인 생각이,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현장에서는 오류를 낳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북극의 곰은 모두 하얗습니다. 노바야제믈랴 지방은 북극입니다. 노바야제믈랴에 사는 곰은 무슨 색일까요?" "네, 노바야제믈랴에 가서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밝혀낸 무수한 과학적 업적이 많고, 논리적 추론을 통해 예측한 많은 것들이 훗날 증명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과율이 지배하는 과학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는, 비록 노바야제믈랴 지방의 곰이 논리적으로는 흰 색이라 하더라도,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섣불리 단정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한 줄의 문장만으로도 쉽게 선동당하는 현대의 네티즌들에게는 꼭 필요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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