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연아에게는 과자를 주지 않는다. 건강에도 해롭고 이빨도 썩으니까 어릴 때부터 단 거나 과자 같은 걸 안 먹여서 입맛을 길들이면 나중에도 과자를 덜 먹고 군것질도 덜하게 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간식은 과일, 유제품, 견과류가 끝이다. 가끔씩 엄마가 직접 만든 시금치케이크나 감자피자만 준다.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는 것까지는 말리지 못해서 가끔씩 과자를 먹을 때도 있다. 그러니 연아도 과자 맛을 안다고 봐야 한다. 엄마나 아빠가 먹으려고 과자를 사오면 연아는 "연아 크면 까까 먹어."라고 말하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그러다가 더 많이 안달이 나면 "엄마, 까까 먹어." 이러면서 엄마한테 과자를 먹인다.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은 거겠지.
오늘 놀이방에서 어떤 남자아이가 연아한테 공을 던졌다. 연아는 멍하게 보고만 있었고 나도 연아가 어떻게 반응하나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다 공 하나가 우연히 연아 얼굴 쪽으로 날아갔다. 공이 이마를 스치는가싶더니 연아가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연아를 안고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남자아이의 엄마가 연신 미안하다고 하면서 "이제 가자." 하고 아기를 유모차에 태웠다. 나는 그러실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 엄마는 이제 갈 시간이 되었다면서 연아에게 미안하다고 젤리곰 한 봉지를 주었다.
연아를 달래며 건반연주 장난감도 만지게 하고 뽀로로 인형도 만지게 했지만 연아는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여기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요."하면서 울먹거렸다. 나는 마지막 방법으로 젤리곰 봉지를 뜯었다. 연아가 계속 울지만 않았으면 오늘 젤리곰도 연아에게 먹이지 않았을 것이다. 연아는 정말 맛있다는 표정으로 젤리곰을 먹으면서 장난감 피아노를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는 주방놀이 장난감과 뽀로로 친구들 인형, 작은 그네와 흔들목마 등을 하나하나 가지고 놀았다.
집에 와서 밥 먹고 자몽 하나를 나눠 먹고 치카치카 양치질을 시킨 뒤, 재우려고 같이 누웠다. 1분 쯤 지나자 엄마가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연아는 벌떡 일어나서 엄마한테 뛰어갔다. 엄마를 만난 연아는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연아 놀이터에서 오빠가 공 던져서 울었셔." 남자아이가 동생이었지만 연아한테는 오빠라고 인식이 되었나보다.
"그래서 까까 먹었셔."
"까까 누가 줬어?"
"오빠야 엄마가 줬어."
"맛이 어땠어?"
"달고 맛있었어."
"그리고 또 뭐했어?"
"집에 와서 치카치카했어."
응? 나는 장난감 가지고 논 일이나 자몽 먹은 이야기 등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걸 다 건너뛰고 '치카치카'라니? 그래서 다시 물었다.
"도서관 갔다가 놀이방 갔지?"
"응"
"놀이방에서 뭐했어?"
"오빠가 공 던져서 연아가 울었셔. 그래서 까까 먹었어."
"연아 공 맞아서 기분이 어땠어?"
"아팠어. 그래서 까까 먹었어."
"연아 화가 났어?"
"화가 나서 울었셔. 근데 엄마가 까까 줘서 까까 먹었어."
엄마와 나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연아가 너무 오랜만에 과자맛을 본 나머지, 그 일이 오늘 있었던 가장 큰 일이고, 그밖의 일들은 모두 시시한 일이 되어 버린 듯했다. 그 뒤로 30분 정도 엄마랑 놀다가 잠들었는데, 무슨 말을 해도 '기-승-전-까까먹었어'의 무한반복이었다.
"연아야, 친구가 그렇게 공 던지면 '하지마' 이렇게 말하는 거야."
"친구가 공 던져서 이마에 맞아서 울었셔. 그래서 까까 먹었어."
"놀이방에서 악기 연주하고 놀았지?"
"까까 먹으면서 피아노 쳤어."
"뽀로로 장난감 있어서 좋았겠네?"
"까까 먹고 뽀로로 인형 갖고 놀았어."
전에 친구 부르마가 집에서 자기 딸한테 설탕 같은 거 안 먹였는데 어린이집 가서 사탕인가 단 걸 한번 맛보더니 "세상에 이런 맛이!" 하면서 환장을 하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늘 보니 연아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화학조미료와 식품첨가물의 달콤한 공격은 무시무시하다. 어차피 끝까지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배불러서라도 군것질 안 하게 밥이나 많이 먹이고 이빨 안 썩게 양치질이나 열심히 시키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