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Patric Norman McHennessy The Boy Who Always Late 라는 그림책이 있다. 한국판 제목은 '지각대장 존'이다.
오늘 동아리 활동 시간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 하고 나도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를 읽고 있었다. 두 시간이 지나고 감상문을 쓰는 시간이 되어 종이를 나눠주다 보니 한 아이가 저 원서를 꺼내 놓고 있었다. 우리 학교 도서실에는 영어 원서가 수준별로 800권 정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저 책을 한국판으로만 읽었는데 그것도 오래 돼서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났다. 영어로 되어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아는 책이라 반갑기도 하고 기억이 잘 안나서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다.
"이야, 너는 영어 책을 읽고 있구나. 대단한데?"
그러니까 옆에 있던 아이가,
"쟤 저거 몰라요. 그냥 아무 거나 꺼내 온 거예요." 라고 하였다.
"그래?" 이러고 책을 들고 살펴보니 대충 내용이 기억났다.
"선생님, 그거 무슨 내용인지 알아요? 선생님도 모르죠?" 이러길래,
"어떤 아이가 학교 갈 때마다 악어나 나타나고 사자가 나타나고 홍수가 나고 해서 매일 지각했는데 선생님은 그걸 안 믿어주고 혼만 냈는데, 어느날 얘가 시간에 딱 맞춰 학교 갔는데 선생님이 '고릴라가 나타났다, 살려줘'라고 하는데 애가 '선생님, 고릴라 같은 건 없어요'라고 했다는 얘기야."
이러니까 또 옆에 있던 아이가 놀라면서
"진짜예요? 선생님 국어 선생님인데 영어 책을 일을 줄 알아요?" 하였다.
보통 때라면 그냥 원래 알던 얘기라고 해줬을 텐데 '파인만 씨,,,'를 읽다 보니 종업원한테, 친구들한테 장난치는 파인만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 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냥 그림만 보고 내가 지어낸 건데? 난 국어 샘이니까 잘 지어내지." 라고 놀리듯이 말을 하였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다 같이
"네?" 하고는 더 크게 놀라는 것이었다.
급기야 맨 처음에 그 책을 가져온 아이는 내 손에서 책을 재빨리 낚아채더니 내 말이 참말인지 농담인지 확인하려는 듯 마지막 장면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는 30초쯤 침묵이 흘렀다. 옆의 아이들도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나는 대충 눈치를 채고 웃으며 물어보았다.
"내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 읽어 봐도 모르겠지?"
그제서야 그 아이도 부끄러운 듯이 대답은 안 하고 빙그레 웃었다. 옆의 친구들도 따라 웃었다.
아이들하고 장난치는 건 언제나 재미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과 거의 장난을 치지 않는다. 거리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어른이 아이한테 장난을 거는 건 너무 비겁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힘이나 권위, 지식이나 정보의 차가 너무 커서 일방적인 놀림이 될 것이고 그런 건 별로 내키지 않아서이다.
오늘 우리 반에 사진을 붙이고 있는데 애들이
"선생님 얘 예쁘죠? 얘도 예쁘죠?" 이러길래
"응, 응." 하고 대답해 주고 있었는데 한 애가
"선생님 저도 예쁘죠?" 하길래
"너는 수술해서 예뻐진 거고." 하였다. 쌍꺼풀 수술을 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저 원래 예뻤어요. 그리고 한 군데밖에 안 고쳤어요." 이러면서 억울해하는데,
속으로 아차, 싶었다. 사과를 할까 잠깐 망설였으나 어물어물 넘어갔다. 애들한테 상처주지 않고 서로 즐거운 그런 장난만 치면서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