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정답이 뭐예요

by zipnumsa


오늘 창작 영재 수업 시간이었다. 전에 내가 쓴 글(줄 위에 써)을 가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학생들에게 제목을 지어보라고 하였다. 어떤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줄 위에 써'로 하겠어요."

"응? 줄 위에 쓰라니? 어디에 쓰라는 말이지? 줄보다 위에 그러니까 칸에 맞춰 쓰라는 말인지, 아니면 그 아이가 쓴 것처럼 줄 위에 겹쳐 쓰라는 말인지 모르겠는데?"

학생은 당황하더니,

"그럼 '줄에 걸쳐 써'로 하겠어요."

"그래? 그럼 이 작가가 결국 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도 공책 칸 무시하고 막 줄에 걸쳐 쓰라는 의도였다는 거니?"

"그건 아니죠."

"줄에 걸쳐 쓰는 아이를 보고만 있자니 왠지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은 책임감도 드는데, 줄에 맞춰 쓰라고 하자니 애를 틀에 가두는 것 같고, 그렇다고 줄에 걸쳐 쓰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래서 고민된다는 내용 아냐?"

"맞아요."

"그런 내용을 함축하려면 제목을 어떻게 지어야 되겠어? 줄에 걸쳐 쓰라고 할 수도 없고 줄과 줄 사이의 칸에 맞춰 쓰라고 할 수도 없다면, '줄 위에 써'라고 애매하게 표현 해서 그 두 의미를 동시에 담아낸다면 완벽하지. 어느 쪽으로도 해석 가능한 함축적인 제목을 지었구나. 완벽한데?"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니 학생의 표정이 밝아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머지 학생들이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 그럼 '줄 위에 써' 그게 원래 제목이에요?"

나는 갑자기 답답해졌다. 원래 제목이냐고 묻는 것이 답이 정해진 문제의 정답을 궁금해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해야할 문학에서 정답을 찾고 있다니.

이런 일도 있었다.

"지금까지 묘사와 설명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작품에서 장면을 묘사한 부분과 그 장면을 통한 깨달음을 설명한 부분을 구분해 보세요."

이랬더니 대부분은 잘 찾아서 대답을 하였는데 한 남학생이 계속 이해가 안 된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잠깐 다음 내용 판서할 동안 쟤를 좀 이해시켜라."

이러고 칠판에 판서를 하는데 두 명이 달려 가서 남학생을 붙들고 신나게 설명한다. 판서를 다하고 돌아보는데 설명이 안 끝났기에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귀를 기울여 보니,

"야, 잘 봐, 여기까지가 묘사고 여기부터가 설명이라고."

"어, 어? 응......"

"여기부터야 알겠지?"

남학생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다. 그런데도 설명하러 온 학생들이

"자, 어디부터가 설명이라고?" 이러니

"여기." 라고 하면서 마지못해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도 보고 기가 찼지만 나머지 학생들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야, 세뇌 좀 그만시켜라."

이렇게 입을 모아 비웃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고쳐쓰기'를 설명하면서 '새는 못 가 나무에 잠들고,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리네'의 '두드리네'를 '미네'로 바꿀지 고민하는 당나라 시인 '가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서 우연히 지나가다 마주친 한유라는 대시인이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말해주었다는 훈훈한 이야기야. 자, 너는 이 시의 분위기에 '두드리네'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미네'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네?"

하고는 다들 우물쭈물한다. 생각할 시간을 주느라 나도 잠자코 기다렸다. 그러자 몇 명이 동시에 물었다.

"그래서 한유는 뭐라고 했어요?"

"답이 뭐예요?"

나는 좀 짜증이 났지만

"비밀이야. 너는 어느 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 이러고 기다렸는데 한 학생이 쐐기를 박았다.

"그냥 제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면 되는 거죠?"

나는 그만 못 참고 이렇게 쏘아붙이고 말았다.

"얘야, 네 생각을 자유롭게 말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고 자유롭게 말을 한다면 그건 자유로운 걸까, 부자유로운 걸까?"

'창작'에 재능이 있다고 선발된 아이들의 머릿속까지 침투한 '정답'에 대한 강박을 확인한 하루였다. 글을 쓸 때만이라도 강박으로 딱딱해진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을 올해 창작 영재 수업의 목표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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