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표준시

by zipnumsa


 우리 아기의 이름은 ‘연(姸, 고울 연)’이다. 편하게 “연아야~”하고 부른다. 학교 가기 전까지 집에서만 부르는 이름이라 성도 없이 이름뿐이다. 개똥이, 마당쇠가 ‘김개똥 씨’, ‘박마당쇠 씨’가 아닌 것처럼, ‘김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요새는 가수 이름도 효연, 효민, 효린처럼 다 성 빼고 부르는데,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옛날로 돌아가는 현상이다.

 학교 가면 본명을 부르게 될 텐데 본명은 ‘김유나’이다. 할아버지가 사주에 맞춰 이름을 지어줬는데, 처음에는 ‘나영’이 어떻냐고 하셨다. 이름 짓는 법이 따로 있나 싶어서 왜 ‘나영’이냐고 물었더니 설명을 해 주었다. 연아 사주에 ‘불’과 ‘흙’이 모자라서 이름으로 보충해 주어야 하는데, 불은 ‘ㄴ,ㄷ,ㅌ,ㄹ’이고, 흙은 ‘ㅇ,ㅎ’이다. ‘ㄴ’에서 ‘나’를, ‘ㅇ’에서 ‘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순서는 상관없다고 했다. 가능성만 따지면 ‘나희, 다현, 태연, 태희’ 이런 것도 되고, ‘희라, 유라’ 이런 것도 되고, ‘요나, 유다, 현태’ 이런 것도 된다.

 내가 그런 건 어디 나와 있냐고 물었더니 ‘성명학’이라는 이름 짓는 책을 보여주었다. 내가 알기로 「훈민정음」 책에 따르면 ‘ㄴ,ㄷ,ㅌ,ㄹ’은 ‘불’이 맞지만 ‘ㅇ,ㅎ’은 ‘흙’이 아니라 ‘물’이다. 그런데 ‘성명학’에는 ‘ㅇ,ㅎ’을 흙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해서 물었더니 원래 주역, 사주가 중국에서 온 것이라 발음도 중국식을 따른다고 하였다. 어차피 나는 성명학이나 사주팔자를 안 믿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 훈민정음을 다시 공부하다보니 최세진의 「사성통해」와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에는 ‘ㅇ,ㅎ’이 ‘흙’이라고 되어 있다고 한다. 아마 최세진과 신경준이 「훈민정음」을 보았다면 저렇게 중국식 발음으로 ‘ㅇ,ㅎ’을 설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940년대에 발견된 「훈민정음」 책에는 정확하게 ‘ㅇ,ㅎ’이 ‘물’이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저 책들이 지어질 때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상에서 사라져 있는 시대였다. 즉, 몰라서 발생한 오류가 지금까지도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작명소에서 돈 주고 지은 이름 대부분은 잘못 지었다고 봐야 한다. 우리 ‘유나’도 ‘흙’을 보충해 주려고 지은 이름인데, 「훈민정음」에 따르면 ‘물’을 끼얹은 셈이 된다.

 내가 대학 다닐 때 부산대학교 앞에는 길거리에 천막을 작게 치고 사주를 봐주는 노점이 몇 개 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시계를 양손에 차고 있었다. 한쪽의 시계는 30분 빨리 맞춰져 있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주팔자를 보려면 태어난 시간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본 동경 표준시를 쓰고 있다. 원래 우리나라는 동경 표준시보다 30분 빠르다. 그래서 만약 새벽 1:10에 태어났다면, 요즘 사주로는 ‘축시’로 보겠지만, ‘전통적인 사주’의 관점에서는 30분을 뺀 ‘자시’로 계산해야 더 정확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대 시간과 전통 시간을 다 보기 위해 시계를 두 개 차고 다닌다.”

 사주팔자를 믿지 않는 나였지만 신선한 관점에 약간 감동을 받았었다. 그런데 지난 2015년 8월에 북한이 동경 표준시에서 평양 표준시로 바꾼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8월 22일에 북한이 제한 시각을 오후 5시까지라고 하며 대북방송을 멈추라고 도발하였을 때, 한국시각(동경 표준시) 5시인지, 북한시각(평양 표준시) 5시인지를 두고 잠시 논란이 있었다. 북한 기준으로 5시까지라면 한국은 5시 30분까지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점에서 동경 표준시를 한국에 맞게 30분 당기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이참에 우리도 바꾸면 좋겠다. 약간의 불편함은 있겠지만 예전 ‘섬머타임’ 시대를 생각하면 의외로 쉬울 수도 있다.

 중국의 성명학에서 독립하고, 일본의 표준시에서 독립하고, 미국의 영어몰입교육에서 독립할 때 진정 이 나라의 독립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우리나라 표준시는 1908년에 한반도 중앙부를 지나는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정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일본 표준시에 맞췄다가 1954년에 동경 127.5도로 다시 복귀했으나 1961년 8월에 다시 동경 135도로 바뀌었다, 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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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쓴 게 2015년인데,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우리가 바꿨으니 우리가 되돌려야지요." 하면서 북한의 표준시가 다시 우리나라와 같아졌다. 역사는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역사이다. 오랜만에 마이클 잭슨의 "Every day create your history"를 찾아 듣는다. https://youtu.be/BM20ZFE8H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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