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ipnumsa Dec 08. 2021

학생에게 교권침해를 당한 사례가 있는가?

예상 외로 사범대에 진학한 장호연이 레포트를 쓴다고 서면 인터뷰를 청해 왔다. 첫번째 질문이 이거였다.

1. 학생에게 교권침해를 당한 사례가 있는가?


나는 중고등학교 떄까지 체벌을 당하고 자란 세대라서 교사가 된 뒤에도 딱히 체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쌍한 어린 애들을 다 큰 어른이 떄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학생들에게 체벌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어떤 중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애들 안 때릴 거면 뭐하러 선생님이 됐어요?”

이게 2004년의 이야기다. 그만큼 폭력과 야만의 시대였다.

그때는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아서 교실에서 수업 중에 아이들끼리 나와서 춤도 추고 했지만 애들도 나도 장난으로 넘어갔고 그걸 교권침해로 여기지 않았다. 나중에는 수업을 듣기 싫은 사람은 방해하지 말고 차라리 나가서 놀라고 했다. 그럴 때는 절반 정도가 복도에 나가서 살구를 하고 놀았다. 그래도 내가 “이것만은 꼭 배워야지.” 하면 집중도 잘해 줬다.

그때 가정교육을 잘못 받아서 친구들을 은근히 따돌리고 교사가 말을 하면 자꾸 거짓말만 하고 무리를 지어서 교사에게 반항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려는 학생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하도 말을 안 들어서 내가 쌍욕을 했더니 학생은 나중에 미안하다 했는데 학부모가 찾아와서 신문사에 신고하느니 마느니 난리를 쳤다. 나도 미안하다 하고 잘 무마했다.

그게 2006년 근처인데 그때부터 학생들을 회초리로 다스렸다. 잘못하거나 숙제를 안 해 오거나 준비물을 안 챙겨오면 의자 위에 올라가서 종아리를 때렸다. 맞은 아이들이 화를 내긴 했지만 반항하지는 않았다.

2007년부터는 아이들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상담 대화 기술을 배우러 다녔다. 그 대화 기술은 참 효과가 좋았다.

2008년에 새 학교로 전근을 갔는데 한 손엔 매를 들고 입에는 공감적 듣기 기술을 장착하고 아이들을 대했다. 말로 다스리는 학생은 공감적 듣기로, 매로 다스리는 학생은 몽둥이로, 매 맞고 화내는 학생은 다시 공감적 듣기로 상대했더니 아이들이 모두 말을 잘 들었다. 

이때부터는 수업도 열심히 들으라고 아이들에게 강요했다. 수업 시작 전에 올라가서 수업 종소리가 나기 전에 자리에 앉는 것부터 훈련하고 수업 중에 딴짓하느라 시간 낭비하면 쉬는 시간 종이 쳐도 수업을 더했다. 그랬더니 어떤 애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별명이 뭔지 아세요? 정수기래요. 왜냐면 깐깐해서요.”

그때 텔레비전에서 웅진코웨이 정수기 광고에서 이순재 할아버지가 맨날 “깐깐한 정수기 웅진 코웨이” 이랬던 때다. 이전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나가 놀던 아이들이 스승의 날에 찾아와서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선생님이 깐깐하다고요?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러다가 아침에 독서 시간에 책은 안 읽고 노는 학생이 있어서 겁을 주려고 의자를 집어던진 적이 있다. 그랬더니 또 학부모가 찾아와서 노발대발 화를 냈다. 이때도 미안하다 하고 잘 무마했다.

그 학교에 정말 모든 교사에게 반항하는 최악의 학생이 있었다. 중3이 되었을 때 아무도 담임을 안 하려고 해서 “우리 반에 넣어주세요.”한 적이 있다. 학교폭력위원회도 수 차례 열리고 자기 아빠도 때리고 선생님들한테도 반말하고 욕하고 했는데 나한테는 반항하지 않았다. 그 애 친구 중에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랑 싸우고 집에 간다고 교실을 뛰쳐 나온 학생이 있었다. 내가 가서 일단 이야기 좀 하자고 끌어 안았더니 힘으로 밀치고 달아나 버렸다. 나중에 어떤 학생이 와서

“선생님 아까 걔가 밀치고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래요.” 하였다.

다음 학교에 옮겼을 때 학생들 책상 배열을 좀 색다르게 한 적이 있었다. 앞 줄 아이들이 칠판쪽으로 보지 않고 서로 마주 보게 돌려 앉는 식이다. 토론식 수업을 잘해보려고 아예 우리 반의 좌석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칠판을 볼 때는 약간 허리를 틀어서 봐야 했다. 

어느날 학부모 한 명이 찾아와서 아이들 허리 비틀어진다고 당장 책상을 원래대로 돌리라고 따졌다. 내가 교육적인 효과를 아무리 설명해도 무조건 

“척추가 얼마나 중요한데 아이들이 바로 앉아야지요.”

“그럼 어머님의 자제분만 바로 보는 자리로 돌려드릴게요.”

“우리 애가 문제가 아니라 학생 전체가 다 그렇단 거예요.”

해서 할 수 없이 책상을 원위치시켰다.

그게 2014년까지의 일인데 그때까지도 한 손엔 매를 들고 입에는 공감적 듣기를 달고 살았다. 매 맞은 애들이 화를 내면 또 공감적 듣기를 통해 무마시켰다.

그때 쯤에 체벌 금지 이야기가 슬슬 나왔다. 나는 매를 버리고 공감적 듣기만으로 학생들을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착해서 매를 들지 않아도 말을 잘 들었다.

19년간 교권침해를 당한 건 결국 학부모들한테서밖에 없다. 학생들은 어쨌든 말을 잘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첫째는 내가 남교사라서 그렇고 둘째는 내가 때릴 때는 남녀 구분 없이 무섭게 때리기 때문이고 셋째는 내가 학생 행동의 기준이 매우 낮아서 웬만한 일에는 아이들에게 혼을 내지 않기 때문이고(얘를 들어 이름을 부르고 욕을 하고 반말을 해도 장난으로 넘김) 넷째는 내가 학생들에게 항상 공감적 듣기를 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선생님에게 교권 침해를 학생은 많이 봤다. 내가 학주(생활지도부장)를 할 때에 그런 아이들도 많이 상대했다. 하지만 19년 동안 1년에 200명씩 3800명 정도의 학생을 가르쳤다 치고 교권 침해하는 학생을 본 게 10명 정도라면 양호한 편 아닌가?

교권 침해를 물론 하면 안 되지만 학생 잘못은 3분의 1 정도이다. 3분의 1은 학부모 잘못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교사의 잘못이다.

한 마디로 1번 질문의 답은 ‘없다’이다. 

작가의 이전글 공인IP 때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