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두 글에 이어 세 번째 질문은 이거였다.
3. 학생인권조례 이후 학생 인권이 향상되었는가?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인권 향상의 원인이 아니다. 학생 인권 향상의 결과이다. 즉, 학생인권조례 덕분에 학생의 인권이 향상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원래 2010년 근처부터 학생 인권에 대한 인식이 점차 성장해 왔고 그 결과로 ‘이걸 인식의 변화로만 맡겨둬서는 안 되겠다. 학생 인권을 조례로 지정하여 아예 못 박아 버리자.’ 이런 공감대가 확대된 것이다.
학생 인권은 인터넷의 발달로 10대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방법이 많아졌고 그러다보니 그동안 억눌려 왔던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대두되었고 그에 공감하는 어른들이 힘을 모으다 보니 체벌 금지, 두발 자유, 이성 교제 허용, 화장 허용, 청소년 집회 허용, 생리 결석 인정 등등등으로 하나씩 둘씩 학생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조례라는 것은 헌법-법률-명령-조례-규칙 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법률에 속한다. 단지 ‘학생 인권을 지킵시다’라고 캠페인하는 것과 인권을 ‘조례’로 제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캠페인은 동참하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조례는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 교사들은 그래서 인권 조례에 반대한 것이다.
지금도 일부 교육청에는 조례가 있고 일부 교육청에는 조례가 없다. 하지만 인권 조례가 없는 교육청에서 학생의 인권이 더 많이 침해된다는 신문 보도는 없었다.
성인의 인권이 천부 인권이듯이 학생의 인권도 천부 인권이다. 성인이든 학생이든 모두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인권도 특정한 상황에서는 제한될 수 있다. 옛날에는 학생들에게 아예 ‘너희는 인권이 없어.’ 하던 시대였다면, 학생 인권 조례가 만들어질 때에는 학생들에게 성인과 동등한 인권을 보장해 주자고 하던 시대였다. 요즘은 학생들의 인권을 ‘어디서 어디까지 보장하고 어디서 어디까지 제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교권’ 즉 교사의 인권 문제와 함께 문제가 되고 있다. 학생 인권은 실제로 많이 향상되었고 앞으로도 더욱 향상될 것이다. 교사가 학생을 ‘교사 대 학생’으로 안 보고 ‘인간 대 인간’으로 대우한다면 학생 인권이니 교권이니 하는 말도 필요 없을 것이다.
내가 교권 침해를 안 당한 이유도 학생들에게 교권을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권이 없는데 교권 침해는 당연히 없다. 없는 것을 침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생 인권 향상의 최종 목적지는 ‘학생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지는 지점이다. 그저 ‘인권’ 하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