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분들과 출장을 가게 되었다. 혼자 KTX 타고 가려는데 한 달 전쯤에 전화가 왔다.
”하단중 김중수 선생님이시죠? 기차표를 예매하려는데 같이 해드릴까요?”
”아, 예, 그래 주시면 고맙지요.”
”예매하고 표는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싸게 동반석을 끊겠다는 말인 줄 알았는데 메일을 열어보니 가로로 네 자리가 우리 자리였다. 이제 동반석 요금제가 없어졌다고 한다.
출장 가는 날 아침, 예매된 자리로 가보니 두 분이 함께 앉아 있고, 통로 건너편에 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아직 한 분이 오지 않은 거라 생각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두 분은 친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는데 전혀 안면이 없는 분들이라 아는 척을 하나, 인사를 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 인사만 하고 남은 시간 동안 어색하게 있는 게 더 불편하니 끝까지 모른 척을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다.
갑자기 통로 건너로 소리가 들렸다.
”응? 여기 16호차 맞나?”
”엄마야, 내가 다른 날 출장 가는 표를 출력해 왔나?”
”이거 14호차 찍힌 표도 있는데?”
”그건 내려오는 거 아니가?”
”이거 화면 캡쳐한 건데, 인쇄하기를 안 눌러서 표가 취소됐을 수도 있다.”
”우짜노, 내려서 확인해 보자.”
하더니 두 분이 짐칸의 짐을 내려서 문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표를 잘못 끊은 사람들이 자리를 잘못 찾아 앉았구나 하면서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 두 분이 급하게 문쪽으로 세 걸음 정도 가다가 문득 돌아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오늘 출장 가는 선생님이세요?”
”네 제가 하단중학교 김중숩니다.”
”왔으면 인사라도 하시지…”
두 분은 안도와 민망함과 원망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원래 자리에 앉았다. 다시 제대로 인사하고 예매한 표 값을 드리고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일단 표는 제대로 예매했다. 그리고 화면캡쳐 해서 확실하게 인쇄까지 해 왔다. 그 표만 믿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분명 같이 예매한 일행의 자리에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와서 앉았다. 그 분들은 여기서 혼란에 빠진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맞지만 일행이 확실하다면 분명 먼저 앉아 있는 우리에게 인사를 할 것이다. 그러나 저 사람은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게다가 그 모습을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절대 교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저 사람의 자리는 저기가 확실하다! 우리가 뭔가 착각한 것이 아닐까? 안 그래도 요새 깜빡깜빡하는 일이 많고 출장도 여러 건이어서 다른 표를 가져 온 것이 아닐까? 아니면 예매한 표를 캡쳐만 하고 발권하기를 안 눌러서 예매 시스템 상에서 표가 취소된 것은 아닐까?
나도 기차를 탈 때 표 때문에, 자리 때문에 실수한 적도 많고, 나 자신에게 확신이 별로 없는 사람인지라 그 분들의 혼란이 내 일처럼 느껴지고 정말 공감되었다. 그 분들이 혼란스러워할 때 한 마디라도 걸어볼 걸 하는 자책도 약간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 분들의 혼란이 “저 사람은 절대 교사가 아니다.”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 너무 재미있고 우스웠다. 평소에도 다른 직종의 친구들에게 ‘너는 교사로 보이지 않아’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같은 교사들에게도 그렇게 보이는 게 신기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출장지에 도착했는데, 어떤 교수님이 연구소의 연구원을 소개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연구원 중에는 학생도 있고 대학원생도 있고 교사도 있고 교사 출신도 있습니다. 한 번 맞춰보세요.”
그냥 혼자 생각해보라는 말인줄 알았는데 연구원을 한 명씩 지목하면서
”이 분이 교사라고 생각되면 손을 드세요.” 하고 손을 들게 하는 것이었다.
아침의 일도 생각이 나고, ‘교사처럼 보인다는 건 어떤 걸까?’하는 궁금증이 생겨 긴장을 하면서 연구원들을 살펴 보았다.
젊고 발랄해 보이는 여자 연구원, 큰키에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은 남자 연구원, 부끄러워하는 듯한 여자 연구원, 차분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남자 연구원, … 딱히 누가 교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 모두가 교사였다 해도 내 눈에는 아무런 위화감이 없어 보였다.
출장 마치고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좋겠다, 부럽다.”라고 하였다. 나도 좋다. 교사처럼 안 보여서 좋은 게 아니라 겉모습만으로 나를 규정 당하고 그 틀 안에서 내가 해석되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교사처럼 보인다’는 건 어떤 뜻일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그 상대에게 무엇을 본 걸까? 옷차림? 머리 모양? 표정? 몸짓? 말투?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