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해주세요 라는 그림책이 있다. 악어가 기린을 사랑하게 됐는데 기린은 눈이 너무 높아서 땅바닥의 악어를 보지 못한다. 죽마도 타보고 다리 위에도 올라가보고 선물도 준비하고 노래도 불러주지만 다 실패한다. 악어는 심지어 밧줄로 기린 목을 묶어서 제발 날좀 보라고! 하듯이 땅바닥으로 끄잡아 당긴다. 물론 해피엔딩이다.
우리집 큰딸 연아는 동생이 태어나기전부터 힘들었다. 엄마가 82일간이나 입원하느라 낮에는 할머니 밤에는 아빠랑 지냈고 엄마는 가끔씩 주말에 십 분 정도 만나는 게 다였다.
3월에 동생이 태어난 후로는 연아도 어린이집을 가게 되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스트레스에, 또래 아이들 사이에 돌고 도는 병 때문에 한달에 두세 번씩 병원에 들락거리고 입원도 두세 번 하느라 마음도 몸도 힘들었다.
10월쯤부터는 어린이집도 적응되고 아픈 것도 좀 나아서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동생이 엄마를 독차지하는 문제가 생겼다. 동생이 엄마한테서 5분 이상 안 떨어지려고 해서 바닥에 잠시 눕혀 놓지를 못한다. 엄마는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아기띠를 하고 있다. 밥도 아기띠를 매고 먹고 화장실도 겨우 간다.
원래는 밤에 잘 때 연아랑 옛날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주면서 잤는데, 이제 동생 때문에 잠자리에 들면 눈 감고 아무말도 못하게 한다. 연아가 말을 하면 동생이 깨서 울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동생이 다 잠들고 혼자서 한 시간 넘게 뒤척인 적도 있다. 연아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행동과 말이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참을성이 없어지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아빠 얼굴을 때리고, 소리지르고 악을 쓰면서 울고 발버둥도 친다.
"내 말 들어주면 좋겠어! 내 말 듣고 있냐고!"하거나
"나도 돌봐줘! 나도 돌봐달라고!"하고 조른다. 엄마는 몸이 한 개라 일일이 들어 줄 수가 없었다.
엄마 사랑을 못받아서 그러려니 하고 받아주면서, 감정을 바르게 표현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는데, 연아가 스스로 자기 말을 찾아냈다.
11월이 되고 어느날 연아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악어처럼 사랑받고 싶다."
엄마한테
"나도 사랑받고 싶어요." 하더니
"안아주세요" 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연아를 아기처럼 들어올려서 안아주었다. 손목이 약해진 지금의 엄마에게는 힘겨운 무게였을 테지만 연아에겐 꼭 필요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마루에 연아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벽에 붙어 있던 책장을 마루 가운데로 옮겨 책장과 벽 사이의 공간을 만들고 책장 뒷면에 예쁜 포스터를 붙이고 바닥엔 매트를 깔았다. 이름은 엄마가 '유나네'라고 지었다. 연아 보고 기분이 안 좋으면 여기서 쉬라고 말해줬다. 완전히 나아진 건 아니지만, 연아는 비뚤어진 행동을 조금 적게 하는 것 같다. 유나네에 혼자 있을 때 가면 "아빠 나가." 이런 말도 한다.
아직도 "나도 사랑받고 싶다."라는 말은 하루에 두세 번씩 한다. 어제는 연아랑 놀다가 장난 삼아 좀 세게 안으니까
"왜 꼭 안아 줘?"
하길래 별뜻없이
"연아가 좋아서" 했더니
"그럴 줄 알았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