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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numsa May 27. 2023

실내화와 운동장

사대부고에 교육실습생 김요섭 님의 공개 수업을 참관하러 갔다가 중학교 때 3년간 가르쳤던 남학생을 만났다. 교육계로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학생이었는데 심지어 지난 3년간 같은 건물에 있었다. 나는 3층, 그는 2층.

"안경은?"

"원래 그때도 공부할 때만 꼈었어서... 근데 그걸 기억하시네요?"

"다 알지."

"중학교 때 썼던 자서전 있잖아요, 요즘도 펼쳐 봐요."

"그래?"

"스무 살 때 힘들어서 그때 배운 대로 자서전을 한번 더 썼어요. 마음이 좀 정리되는 것 같더라고요."

"아, 그거 책도 나왔는데 한 권 줄게."

"이미 샀어요."

등등 추억팔이 하다가 이제 그만 헤어질 때가 되자 이런 말을 했다.

"교생 와서 점심 먹고 운동장 산책할 때마다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

"왜?"

"중학교 때 맨날 실내화 신고 운동장 나간 애들 잡으셨잖아요. 그때 저도 한 번 걸린 적이 있거든요."

옆에 있던 김요섭님이

"PTSD 오는 거임?" 하고 깐족거렸지만, 나는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뜨끔했다. 나한테 맞은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2014년에서 2015년 사이에 체벌 금지가 엄격하게 시행되기 직전 실내화, 명찰, 교복, 각종 생활규칙에 매를 휘둘러 가며 지도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가 한 이야기는 매와 관련이 있긴 있었다.


중학생 때, 자기랑 강민기랑 점심 시간에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ㄱ자로 꺾인 보도블럭으로 가기 싫어 운동장 흙길을 실내화로 밟고 지나가면 그 흙이 교실과 복도에 먼지가 되어 휘날리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단속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생활지도부장, 즉 학주였다. 내가 현관 기둥 뒤에 숨어 있다가 나와서

"둘 다 이리 와. 규칙을 어겼으니 매를 맞겠다. 몇 대 맞겠나?"

했다는 것이다. 강민기는

"한 대 맞겠습니다." 

해서 한 대 맞았다. 이제 자기 차례가 되었다.

"저는 맞지 않겠습니다." 

"잘못을 했으면 매를 맞아야지."

"매를 맞는 건 다시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서지요?"

"그렇지.'

"저는 매를 맞지 않아도 실내화를 신고 운동장을 나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믿을 수 없다."

"그럼 다음에 걸리면 두 배로 맞겠습니다."


결국 그래서  자기는 맞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016년부터는 체벌이 전면 금지되어 나도 매를 다 버렸다. 내가 매를 때린 아이들 모두에게 찾아가 한 명 한 명에게 용서를 빌고 싶은 심정이다. 담임을 안 하고 수업만 하던 시절에는

"선생님, 선생님은 왜 애들을 안 때려요? 애들을 안 때릴 거면 왜 선생님이 됐어요?"

이렇게 묻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담임을 하고 학생부장을 하면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반에 도난 사건, 금품 갈취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매가 없었다면 그 일을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쩄든 사대부고에서 만난 교육실습생에게는 용서 빌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매는 안 맞았지만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쭉 잘 지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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