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라는 중력을 벗어난 '0'의 공간
5평짜리 사무실이 재고 상자와 서류 뭉치로 터져나갈 듯할 때,
나는 종종 도망치듯 비즈니스 호텔을 찾곤 했다. 체크인을 하고, 카드 키로 문을 열고 들어선 그 낯선 방.
바스락거리는 하얀 침구, 물기 하나 없는 건조한 욕실, 그리고 내 물건이라곤 하나도 없는 텅 빈 책상. 그 낯선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꼈다.
내 사무실과 집에는 덕지덕지 붙어있던 해야 할 일들이 그곳에는 없었다. 쌓여있는 설거지(과거의 게으름)도, 날아올 고지서(미래의 걱정)도 없었다. 호텔은 철저하게 지금, 여기만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왜 굳이 비싼 돈을 지불하고 남의 방에서 잠을 청할까. 단순히 푹신한 침대나 조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의 중력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집은 편안하지만 동시에 내가 해야할 일이 있는 무거운 책임의 공간이라 볼 수 있다. 방바닥이 더러워지면 청소를 생각해야 하고, 냉장고를 열면 혹시나 상했을 음식을 걱정해야 한다. 집이라는 우주는 수많은 생활의 중력으로 나를 잡아당긴다.
하지만 호텔은 무중력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나는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사장, 혹은 실패한 사업가가 아니다. 그저 302호 투숙객이라는 익명의 존재가 된다. 나를 설명하던 모든 꼬리표가 떨어져 나간 그 0(Zero)의 상태. 우리는 그 텅 빈 익명성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달콤한 휴식을 맛본다.
1박 2일의 짧은 일탈을 마치고 체크아웃을 한다. 우리는 다시 중력이 작용하는 현실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짧은 무중력의 경험은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호텔에서 돌아온 날, 나는 사무실의 재고 상자 하나를 정리했다.
생각 정리도 함께.
그리고, 내 일상에도 숨 쉴 구멍이 필요했기에.
가끔은 내 집을 낯선 호텔처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널브러진 일상의 흔적들을 잠시 치워두고, 마치 처음 체크인한 여행자처럼 내 공간을 마주해 보는 것. 그 낯선 시선이, 익숙함에 지친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힘을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