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의 시대, '취향'이라는 비효율을 소비하다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을 누비던 시절, 나는 나만의 빅데이터를 발견했다. 대로변에는 푹신한 소파와 완벽한 와이파이가 보장된 거대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어코 그곳을 지나쳐, 지도 어플을 켜야만 찾을 수 있는 구석진 골목으로 향한다.
도착한 곳은 간판도 잘 안 보이고, 의자는 딱딱하며, 테이블은 무릎에 닿을 만큼 낮은 5평 남짓한 작은 카페다. 상업적 입지 분석으로만 따지면 낙제점에 가까운 그곳에,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린다. 도대체 왜일까. 우리는 왜 편리함이라는 확실한 정답을 버리고, 불편함을 돈을 주고 사는 걸까.
나는 그 답을 결핍에서 찾았다.
우리는 모든 것이 규격화된 세상을 산다. 똑같은 아파트 구조, 똑같은 사무실 파티션, 똑같은 프랜차이즈의 맛. 효율적이지만 지루한 이 복제된 우주 속에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고유한 우주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가 보장된 맛과 공간을 판다면, 골목길의 작은 카페는 주인의 취향을 판다. 그곳에는 주인이 직접 고른 음악이 흐르고, 손때 묻은 커피잔이 놓여 있고, 비효율적이지만 낭만적인 인테리어가 있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 좁은 공간에 꽉 들어찬 타인의 고유한 세계를 잠시 빌려 쓰러 가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모든 물건을 1초 만에 살 수 있는 시대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공간의 가치는 더 높아졌다. 클릭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것. 공간의 공기, 냄새, 질감, 그리고 주인의 영혼이 담긴 이야기. 이것들만이 오직 오프라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공간의 생존 법칙은 바뀌었다.
얼마나 목이 좋은가(입지)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기다움을 밀도 있게 담아냈는가(콘텐츠)이다.
5평짜리 내 첫 사무실이 탐사선이었듯, 골목길의 작은 카페들도 저마다의 깃발을 꽂은 탐사선들이다. 나는 오늘도 그 불편하고 좁은 의자에 앉아,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것은 커피값이 아니라, 삭막한 도시에서 멸종해가는 개성을 지켜내는 값어치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