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정점에서 마주한, 화려하지만 텅 빈 우주
대한민국에서 '건물주'라는 단어는 일종의 신분 계급이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을까. 사람들은 그들이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세를 보며 우아하게 와인이나 마실 거라 상상한다.
하지만 부동산 현장에서 내가 목격한 진짜 건물주들의 삶은, 그 상상과는 꽤나 다른 풍경이다.
손님 분 중에는 강남에 수백억대 빌딩을 가진 한 회장님이 계신다. 남들이 보기엔 성공의 끝판왕이지만, 그는 허구한 날 우리 사무실에 들러 믹스커피를 찾는다. 낡은 등산복 차림으로 믹스커피를 휘휘 저으며 그가 털어놓는 고민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 수석, 3층 세입자가 또 배관 막혔다고 난리네. 관리 소장은 말을 안 듣고... 자식 놈들은 내 얼굴보다 유산에만 관심 있는 것 같고."
건물을 가진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자산이 늘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내 우주 안에 수십, 수백 명의 타인이 들어와 살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불만과 욕망까지 온전히 내 어깨로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새벽 2시에 터진 급작스러운 누수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임대료가 밀린 세입자의 사정을 듣느라 속을 끓인다. 그 분들도 사람이라 칼같이 냉정하게 대하긴 참 쉽지 않다. 건물이 화려하고 높을수록, 그 그림자 또한 짙고 무겁다. 그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주인의 영혼을 담보로 유지되는 거대한 생명체나 다름없다.
가끔 그가 텅 빈 빌딩 옥상에 올라가 멍하니 도시를 내려다보는 뒷모습을 본다. 그 넓은 옥상은 온전히 그의 소유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곳엔 대화를 나눌 사람 하나 없다.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우주는 넓어지지만 밀도는 옅어진다.
N잡러 청년의 6평 방이 꿈으로 꽉 찬 고밀도의 우주라면, 노신사의 수백 평 빌딩은 화려하지만 공허한 저밀도의 우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좁디좁은 내 ㅎ사무실 소파에 앉아,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으로 그 공허함을 채우고 가는 걸 테다.
나는 이제 부러움보다는 연민 섞인 존경의 눈으로 그를 본다. 그가 견디고 있는 것은 건물의 무게가 아니라, 그 넓은 우주를 홀로 지탱해야 하는 고독의 무게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