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불편함을 기꺼이 껴안는 사랑에 대하여
부동산 중개 앱을 켜고 반려동물 가능 필터를 체크하는 순간, 화면 가득했던 매물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100개 중 5개나 남을까. 대한민국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 집을 구한다는 건, 시작부터 95%의 선택지를 포기하고 들어가는 불리한 게임이다. 물론, 부동산 플랫폼에서 반려동물 가능 필터가 생긴 것 자체가 펫프렌들리로 세상이 바뀌어져 가고는 있다는 뜻이다
"사장님, 집이 좀 낡아도 괜찮아요. 우리 두부가 짖어도 방음만 잘 되면 돼요."
"햇빛은 꼭 들어와야 해요. 고양이가 창가에서 해바라기하는 걸 좋아해서요."
그들은 역세권이나 풀옵션 같은 자신의 편의는 너무나 쉽게 포기한다. 대신 그 자리에 털 뭉치 가족을 위한 조건을 최우선으로 채워 넣는다. 집을 구하는 주체는 사람인데, 결정권은 저 작은 생명체에게 있는 기이한 주객전도.
어렵게 구한 그들의 집을 방문해보면 더 가관이다.
거실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명당자리는 거대한 캣타워가 차지했고, 미끄러지지 말라고 깐 못생긴 매트가 멀쩡한 강마루를 뒤덮고 있다. 소파는 긁힌 자국 투성이고, 검은 옷엔 늘 하얀 털이 묻어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이 공간은 비효율과 불편의 집합체다. 하지만 그 불편한 공간을 바라보는 집사의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그 풍경을 보며 생각한다. 사랑이란 게 별건가. 나의 우주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것. 내 공간이 망가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는 마음. 그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텅 빈 집에 들어왔을 때, 나를 반기는 온기가 있다는 것.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다급하게 달려오는 발톱 소리가 들린다는 것. 그 짧은 순간의 위로가 그 모든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세입자들은 집주인에게 사정한다.
"우리 강아지는 정말 얌전해요. 벽지 훼손되면 제가 다 물어낼게요."
자신의 우주를 엉망으로 만들 권리를 얻기 위해, 타인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 그 바보 같은 사랑 덕분에, 삭막한 도시의 네모난 방들이 비로소 온기 있는 집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