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

by 지숲

홀로 꿋꿋이 살아온 내 삶에 새로운 동반자가 생겼다. 잊을만하면 모습을 드러내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친구다. 이름은 가미. 솔직히 반갑지 않다. 더 솔직히 말할까. 가미가 나타나면 어딘지 마음이 쓸쓸하고 서늘해진다.

가미는 엉킨 짧은 실타래 같기도 하고 흐릿한 검은 반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정확한 모양은 파악하지 못했다. 자세히 살피려 하면 곧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정면을 응시할 때 살짝 오른쪽으로 비낀 그즈음이 가미의 자리다. 밝은 날 무언가를 바라볼 때면 그 무언가와 나 사이에 가미가 등장한다. 그럴 때면 가미는 꿋꿋하기만 하다. 내가 바라보고 싶은 것은 저기 저쪽에 있지만 가미는 흔들흔들 몸을 떨며 꼭 제 만큼의 시야를 가로막는다.


‘가미, 너네.’

눈길을 제 편으로 돌리면 또 사라지고 마는 가미.


해처럼 눈 부시게 밝은 데를 바라보고 나면 눈 앞에 어른거리다 곧 사라지는 잔상처럼, 가미도 그렇게 어느 날 떠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기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자 병원을 찾았다. 동공을 확대하는 약을 넣고 한 시간을 기다려 뻥 뚫린 내 눈을 살핀 의사는 별다른 병증은 없고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개수가 갑자기 늘어나거나 하면 다시 오세요. 어떤 경우는 없어지기도 하지만 그럴 일은 아마 없을 거예요. 좀 일찍 나타난 편이긴 해요. 그래도 자연스러운 일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하지만 나는 마음이 쓰인다. 네가 영영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얼굴에 주름이 늘고 흰 머리칼이 무성해져도 그러지 않았는데, 가미는 내가 인생의 어디쯤에 서있는지를 자꾸 생각하게 한다. 무리하면 시큰해지는 무릎도, 필요할 때 잘 떠오르지 않는 단어들도, 서고에 꽂힌 어느 책에 쓰인 ‘돌봄’이라는 글자도. 가미는 내 삶에 그렇게 등장해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달려가던 발목을 붙잡고 중력에 늘어진 허리를 떠민다. 우뚝. 가미, 너네.


가미에게 이름을 붙였다. 가미라고.


가뭇한 모양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네게 바라는 게 있어. 내게 지혜롭고 형형한 영감으로 존재해 달라고, 그렇게 수시로 찾아와 달라고, 가미.


몸을 많이 쓴 날일수록 비몽사몽 간이라도 요가를 하고 눕고 아침이면 뻐근한 몸을 조심스레 깨우고 목과 팔을 천천히 드는 것, 살아가던 어떤 순간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잠시 멈추는 것, 가미랑 살아가는 건 그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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