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1.22:13~22:22
문명은 걷어내야 할 것, 자연은 복원해야 할 것. 그렇게 믿었다.
그 생각이 바뀐 건, 어느 진한 봄날의 백패킹 이후였다. 극심한 꽃가루 알레르기에 눈물 콧물을 쏟고 밤에는 뚝뚝 떨어지는 체온을 붙잡느라 고생하고 제대로 씻지 못해 끈적이고 개운치 못한 몸으로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포장된 시멘트 길에 발을 내디뎠을 때, 거기다 맑은 물이 콸콸 흐르는 화장실에서 비누로 손을 씻었을 때, 인정하기 싫었지만 깨달았다. 나는 문명이 좋다.
지붕을 올리고 벽을 세운 공간, 몸을 감싸 보호하는 옷가지, 깨끗한 물과 아늑한 이부자리가 현대를 살아가는 내게는 중요하다. 잘 가꾼 공원과 잘 닦인 길,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안전을 점검하는 등산로로도 자연만이 주는 위로와 원시를 향한 욕망을 충분히 채워준다.
그럼에도 나는 아마 그 이상의 모험을 꿈꾸겠지. 살아있는 한. 비등로를 걷고 보다 깊은 야생을 누리기 위해 몸을 만들고 기술을 닦겠지. 이 글 때문에 구태여 목표를 세워본다. 내년 2021년에는 지붕 없는 곳에서 잠을 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