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4.08:14~08:26
슬기는 절대절대, 절대! 졸업앨범 만큼은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더 궁금했지만 억지로 볼 일은 아니었다. 그후로 슬기는 내 졸업앨범을 모두 봤고,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까지 봤다.
"알았어. 보여줄게."
보여달라고 떼쓴 적 없는데 마지못해 보여준다는 듯, 슬기는 중학교 졸업앨범을 갖고 왔다.
"이것부터 봐?"
"응. 이것부터. 충격 요법이야. 이것부터 보고 그 다음에 초등학교, 고등학교 순으로 보자."
"대학 시절이 제일 자신있나 봐!"
"대학 앨범은 버렸어."
"뭐라고?"
"대학 앨범이 있었다면 그것부터 제일 먼저 보여줬을 거야."
"야, 아무리 그래도..."
슬기는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내 앞에 앨범을 펼쳤다.
야, 드디어 슬기를 찾았다. 6반... 풋, 역시 귀엽다. 지금이랑 똑같잖아. 화장만 안 했을 뿐. 슬기는 그걸 알까?
"턱을 쳐들고 있네. 오만방자하다!"
이녀석 나름 세보이고 싶었나보다. 턱을 쳐들었으니 자연스럽게, 눈은 내리깔았다.
"어쩌다 그렇게 찍힌 게 아냐. 나름 연습하고 계산해서 지은 포즈야."
"세상이 다 아래로 보였어?"
"... 목이 길어보이려고."
"푸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슬기는 이정도면 충격요법이 제대로 먹혔다 판단했는지 달관한 얼굴로 말했다.
"턱을 그 정도 쳐들면, 얼굴 위아래를 잇는 길이와 목의 길이가 같아. 봐, 목 길어보이지. 중학 시절은 그런 나이야. 나만 그래? 아니잖아. 너도잖아.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