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3.18:57~19:15
그때가 스물네 살이었는데 유럽 배낭여행하고 파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경유지였어. 방콕이. 항공권 예약할 때만 해도 신이 나서 스탑오버 길게 잡았지.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2~3일 정도 더 머물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랬는데 어쨌는 줄 알아? 다 취소하고 제일 빨리 갈아탈 수 있는 시간으로 옮겼잖아. 지금은 영어도 잘 못해서 그게 신기한데 파리 드골공항에서 발권하면서 경유 시간 제일 짧게 옮겨달라고 그랬다? 그렇게 집에 가고 싶었어. 스물한 살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했거든. 45일 동안 중국 배낭여행. 출발할 때는 앞뒤 안 보고 종강도 안 했는데 그냥 날아가버렸잖아. 근데 내가 그럴 줄을 몰랐다, 진짜. 일주일만에 집에 가고 싶은거야. 아니, 엄마가 보고 싶은거야. 엄마 보고 싶어서 울면서 잤어. 하하. 나중에는 우리 말이 그립더라. 진짜 못 견디게 그립더라. 그때도 실은 일주일 정도 더 여유가 있었어. 45일도 이미 길었지만 아직 방학도 남았고, 원래 계획했던 실크로드 기차여행은 그때부터 시작이었거든. 근데 너희들끼리 가라. 그러고 나는 돌아오는 항공권도 취소하고 배 타고 왔어. 혹시 오해할까봐 그러는데 친구들하고 싸운 거 아니야. 최고의 멤버였어. 얼마나 재밌었다고. 맞아. 재밌었어. 재밌고 멋졌지. 내가 한국 그리워했다고 여행이 별로였던 건 아냐. 두 마음이 다 있었던 거지. 어쨌든 돌아와서 인천에 배가 들어가는데 저기 선착장에 한국말이 보이는거야. 야... 눈물이 나더라. 내가 초등학교 입학식도 혼자 간 애거든. 우리 집이 편도 항공권만 끊어서 유학 가는 언니 현관에서 배웅한 집이야. 비온다고 생전 우산 한 번 가져다주는 사람이 없었어. 근데 내가 애원했잖아. 엄마 제발 인천 와달라고. 그때 나타난 우리 엄마 얼굴 생각나. 귀찮게 얘가 왜 이래. 이런 표정이었어. 근데도 얼마나 고맙던지. 물론 현타 왔지. 그래도 무슨 상관이야. 나는 집에 왔는데. 앞으로는 한국만 다니고 싶었어. 그게 벌써 10년이 넘었네. 그렇다고 그 사이 해외여행을 안 한 건 아냐. 부지런히 다녔다. 별 기대도 없었지만. 그냥 해외 나가기 쉬운 시절이었으니까. 우리 시대도 사회도 그리고 내 형편도.
딱히 욕구도 없으면서 그랬어. 그런데 있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미 2분 지났지만, 하고 싶은 말은 뭐였냐면, 지금은 낯선 곳, 야생, 이런 데가 무지 그립다? 날마다 닥치는 하루의 모험을 온 몸으로 강행하고 싶어.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여 그런 게 아니야. 코로나 이전에 얼핏 들기 시작한 변화인데, 그러니까 사람이 달라진거지. 내가. 니체 때문인 거 같아. 아니지, 내가 니체를 선택한 거지.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지만 다시 없을 오늘을 온 존재로 살아가라. 좋았어, 한 번 더! (나는 니체 이렇게 이해했어.) 니체가 지르는 날벼락 같은 호통이 처음엔 사실 의아했고, 나중엔 되게 맘에 들더라.
동남아라는 주제를 받고 왜이런 말을 주절였을까. 코로나만 아니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국이기 때문이었을까? 미안, 8분 오바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