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3.07:56~08:06
저런 벽돌 좋더라고요. 고급스러워보여요.
상아빛깔 벽돌로 쌓아올린 어느 빌라를 보고 오빠가 말했다. 2층짜리 다가구 주택들이 허물어지고 5층짜리 빌라가 들어서는 동네였다. 아직 2층짜리 다가구 주택에 살고 있는 엄마가 물어봤다.
저 색이 예쁘냐? 나는 잘 모르겠는데. 이 빨간 게 낫지 않아?
가장 흔한 붉은 벽돌 집이었다.
아니.
아니.
아니.
차 안에 있던 나머지 세 사람이 입을 모았다.
저기 검정색은 어떠냐?
아니.
아니.
아니. 나도 상아색이 더 나은 것 같아. 베이지 계열 저 벽돌도 괜찮고. 붉은 벽돌이라고 해도 자주빛깔 말고 바랜 듯 회붉은벽돌은 괜찮은 것 같아요.
나도 의견을 보탰다. 엄마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창밖을 유심히 봤다.
엄마의 집이 빌라가 된다면 아쉬움은 일말도 없다. 그 집은 끔찍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식구들은 그 집으로 이사했다. 그 집을 고르고 이사 날을 잡는 과정에서 엄마를 제외한 모든 식구들은 반대를 했다. 하지만 이사는 결정됐고, 이후로 간이역에 임시거처를 마련한 듯한 삶이 10여 년 이어졌다. 나는 뭐가 정리가 되질 않고 그림이 잡히질 않고 자꾸 일이 미뤄지는 내 삶이 어쩌면 이 집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 10여 년 세월을 다 보낼 즈음 하게 됐다. 그 이후 집을 나왔고, 이제 그 집엔 엄마만 살고 있다. 아빠는 20여 년 이어온 타지 생활을 여전히 이어 하시며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만 오시고 언니는 그 집에서 나와 유학생활을 4년 하더니 돌아와서도 집에서 먼 곳에 직장을 잡고 그 근처에 집을 구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한두 해 다시 집으로 들어왔지만 곧 결혼을 해서 나갔다. 오빠는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곧 기숙사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해 나갔다. 내가 이 집에서 엄마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산 사람.
집을 나와서는 그 집에 가는 게 그렇게 싫었다. 들어서는 순간 무기력해지는 집. 잠깐 들러 후다닥 나오곤 했고, 어떻게든 밖에서 아니면 내 집에 가족들을 초대했다. 그 집엘 앞으로 적어도 매주 한 번 찾아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엄마랑. 오늘은 첫 날. 엄마는 식당에서 밥을 사준다고 하셨지만 나는 집에 들를 거다. 10분이라도. 내 기운을 빼앗기지 않고 집에서 오똑 서서 시간을 이겨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