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0분 동안

앞뒤

2021.1.17.23:55~24:05

by 지숲

손님이 왔다. 잡곡에 무우, 버섯, 콩나물 넣어 밥을 짓고 냉이장을 만들고, 엊그제 무친 무생채, 들깨 미역국을 냈다. 손님이 "술 먹고 싶어. 소주."라고 말했기 때문에 요근래 가장 맛있게 먹었던 막걸리 한 병과 고급 증류소주 한 병도 준비했다. 내일 아침에 먹을 김치찌개도 미리 만들어놓았다.


손님이 왔다. 몇 년만일까. 중간 중간 두세 해씩 걸러 만나 회포를 풀기는 했어도 깊은 대화를 나눈지는 20여 년만이다. 중학생 시절 이 친구를 만나 우정이란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때는 우정이 아니고 사랑이라 생각했다. 에로스의 사랑이 아니었음에도 '사랑이란 이런 것이구나.' 친구와 관계맺고 친구가 살아가는 걸 보며 느꼈다. 내 안에 환대라는 것이 처음으로 자리잡게 된 건 아마도 이 친구 덕분이다. 청소년기 숱한 밤과 낮을 이 친구와 보냈다. 특히 친구네와 우리집 사이 정자에서 밤이 맞도록 함께했던 시간이 또렷하다. 거기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다만 많이 충만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결혼하고 가장 먼저 아이를 낳은 친구와 결국은 멀어졌다. 서로 데면데면하거나 미워하게 된 게 아니라 정말 만남을 성사하기가 어려웠다. 또 어렵사리 만든 자리에 친구의 아이들이 따라와 우리는 실상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거의 20년 만에 혼자서 우리 집에 찾아온 친구를 마주하니 어쩜 그 사이 시간들이 다 사라진 듯, 다시 고등학생이 된 듯 하다. 앞뒤 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늘어놓고 까르르 깔깔깔 몇 번을 웃고 또 울었다.


송아야, 너는 어쩌다 내 친구가 되었니. 고맙고 고마워. 그 외롭고 고집스럽던 중학생 지숙이에게 찾아와줘서.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 내어 보이고 아낌없이 우정을 나눠준 네가 아니었음 난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keyword
팔로워 25
매거진의 이전글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