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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분 동안

경사

2021.1.22.23:30-40

by 지숲

이 집에 이사온 뒤로 기동력이 많이 떨어졌다. 정말로 떨어졌을까? 지하철역 5분 거리, 자전거로 어디든 이동하기 좋은 천 변에 살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그렇다. 특히 대중교통으로 지역 밖에 나가거나 갔다 돌아오는 길은, 마을버스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30여 분을 추가로 더 쓰게 된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버스가 빙빙 돌아 우리집까지 가는 시간, 그 시간이 누적되면서 나는 마음이 점점 못 견디게 힘들어졌다. 자전거를 타면 되지 않냐고? 중학생 때 이후로 자전거 생활이 몸에 벤 나조차도 우리 동네 경사도를 꾸준히 따라 올라오는 건 역부족이었다. 엉덩이를 안장에서 떼서 체중 실어 패달 꾹꾹 밟는다면야 어떻게든 집앞까지 닿았지만 땀이 흠뻑 났고 짐이 많은 날은 더욱 고됐다.


처음엔 전기오토바이를 알아봤지만, 클라이밍을 시작하면서 위험한 일은 클라이밍으로 됐단 판단으로 포기했다. 클라이밍을 더 오래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오토바이쯤 포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중엔 전기자전거를 알아봤다. 가만 보니 우리 동네 사람들 중에 전기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꽤 됐다. 대중교통 연계가 수월하고 경사진 언덕도 잘 올라가는 걸 중심에 두고 선택지를 좁혀나갔다. 드디어 고른 모델은 까미노썬더! 이탈리아 무슨 오토바이 만드는 브랜드가 디자인 콜라보를 했다는데도 불구, 디자인이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 정도면 양호했고, 40퍼센트나 할인가를 찾았다. 기능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해시태그로 검색해 처음 보는 인스타그래머에게 조언을 구하고 연락 끊긴지 최소 5년은 넘은 자전거 전문가 오빠에게도 연락했다. 모두의 조언을 종합해도 까미노썬더는 완벽했는데, 웬걸... 자전거 판매하는 분이 극구 말렸다. 너희집 경사는 안 된다. 이 자전거는 대중교통 연계 안 된다. 전기자전거 접히는 건 대중교통 타라고 있는 게 아니다. 무겁다. 못 든다.


전기 자전거만 있으면 완벽할 줄 알았던 모든 계획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마음을 고쳐먹는 수밖에 없어보이는데 그 비결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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