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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분 동안

수정

2021.1.23.23:35-45

by 지숲

꼭 공개하고 나서야 보이는 오탈자들이 있다. 글 작성이 활성화된 페이지에서는 글을 읽는 뇌의 한 회로가 잠시 떨어지는 게 분명하다. 그 떨어진 회로는 '완료' 혹은 '발행'을 클릭하는 순간 다시 붙는다. 클릭이 곧 회로 연결 스위치인 거다.


- 이 단어 왜이렇게 자주 등장해?

수정. 다른 비슷한 단어를 찾아 교체한다. '완료' 클릭.


- 엥? 이런 얼토당토 않는 맞춤법 실수는 누가 한 거지?

수정. 냄새는 맞는 게 아니고 맡는 거잖아. '완료' 클릭.


- 아참! 그 얘기 안 썼네.

그 얘기 쓰려고 올린 게시물인데 정작 그 얘긴 안 썼다니. '완료' 클릭.


숱한 수정- '완료' 클릭의 단계를 반복한다.


단, 예외가 있다. 여기 '10분동안' 매거진이다. 나는 알고 있다. 이곳에 수정을 기다리는 게시글들이 여럿이라는 걸. 특히 그중에 어떤 게시물 하나는 오탈자 범벅이란 사실을. 그 글은 만취해서 돌아온 밤에 기특하게도 기절하지 않고 쓴 글이기 때문에 성의가 없어 보일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지만 잠시 박제해두고 있다. 왜냐, 기특하니까.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성의 없지 않았으니까.


언젠가는, 그 글들을 때묻은 아이 얼굴 씻기듯 말끔하게 고쳐놓아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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