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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Feb 01. 2021

봄은 또 찾아온다.

코로나로 집콕에 가정보육 콜라보를 이룬 지 1년.

한 주를 살면서 바깥공기 냄새를 겨우 맡아보는 순간은 겨울 땔감을 채우듯 일주일치 장을 보러 나갈 때나 재활용 박스를 차고 넘쳐 소리치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다. 겨우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단지 안 분리수거장에 나가면서 그 짧은 외출이 뭐라고 옷을 갈아입고 문 열기 전부터 에어팟을 챙겨 끼고 음악을 고르며 현관문을 나선다.


쾌청한 겨울 하늘에 걸린 조각구름 사이로 내리는 맑고 따뜻한 겨울 볕. 아직 찬기가 서려 있지만 오늘이 겨울과 봄 사이 어디쯤 와 있음을 알려주는 상쾌한 공기까지. 걸어 나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경쾌해진다. 종류 별로 정리해둔 재활용 쓰레기를 꽉꽉 채워 담은 제법 무거운 쇼핑백 두 개를 들고 터덜 터덜, 분리수거장으로 간다. 지나는 길에 있는 아파트 주차장엔 건물이 만든 그늘로 여즉 녹지 않은 언 눈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데 코너를 돌면 나오는 분리수거장과 작은 놀이터에는 가린 건물 하나 없이 하늘이 트여 겨울 볕이 사방에 고르게 내려앉아 있다. 저쪽 끝에서 코 끝을 스치는 청량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 짧은 길을 걸어가면서 코로나로 안과 밖이 죄 시끄럽고 고단했던 지난 1년이 바람과 함께 스친다. 살면서 이런 상황을, 이런 난리를 겪을 일이 또 있을까 싶었던 시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연함이 나와 내 주변 누구나 언제든 걸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무거운 짐처럼 마음에 지워진 곤한 기분으로 1년을 보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전쟁을 해왔는데 문뜩 그 전쟁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살아왔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렵지만 그래도 매일을 살았고 고단하지만 해야 할 수고를 하며 오래도록 인내해왔다. 살아낸 건지 살아진 건지 모르나 그것도 산 것이다.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1년이었다.  


겨우내 몇 번이나 쏟아진 폭설로 고생도 하고 수년만에 찾아온 한파에 추위에 떨기도 했던 올해 겨울도 이제 끝자락에 와있다. 계절은 어느새 겨울과 봄, 그 사이 어디쯤을 지나고 있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았고 그동안 정직한 시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실히 제 일을 하고 있었다. 긴긴 겨울을 보내고 맞이하는 생명 어린 봄은 언제나 반갑지만 올해는 봄을 반기며 든 손길에 고마움까지 베어난다.


결국엔 다 끝이 있다. 지난 1년 짐처럼 지고 있던 불안함과 막연함의 무게가 조금 덜어지는 기분. 아마 코로나는 독감처럼 영원히 계절성 질병으로 남을 테지만 백신이 보급되면 정말 깜깜하고 막막했던 작년과는 조금 다른 국면을 맞이 하지 않을까. 여전히 마스크와 함께 하게 되더라도 사랑하는 이들이 지금보다 조금 더 안전하고 건강한 일상을 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숨이 트일 것 같다. 종식은 아닐 테니 수고와 인내는 계속되더라도 트인 숨으로 호흡하면 버틸 힘을 좀 더 내볼 수 있지 않을까. 올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1년이 될 거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긴 호흡으로 보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될 테니.


황당하고 곤했던 겨울이 지나고 다시 볕이 든다. 머리 위에 어깨 위에  볕이 고르게 내려앉는다. 살면서 여러 번의 겨울을 보내고  끝에서 봄을 만나는 . 봄은  찾아온다.


지난 1년 동안 최전선에서 둑을 쌓으며 밤낮없이 수고하신 분들과 많은 희생을 치르며 고생하신 분들께 위로와,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나는 감히 체감할 수 도 없을 만큼 고단한 시간에 일상을 모두 내어 준 그분들의 삶에 어서 봄이 찾아오길 기도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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