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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Feb 03. 2021

뭐하느라 손톱도 못 깎고 있었을까

_ 엄마의 하루에 담는 마음

손톱이 손바닥을 찔러 온다. 손을 펴 보니 깎아야 할 때가 지나 꽤 길어진 손톱이 보인다. ‘아, 손톱 깎아야겠네.’ 하고 생각하는데 저쪽에서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로 이미 머릿속 가득 채워진 투두 리스트 사이에 채 끼워 지지도 못한채 손톱깎기는 잊혀진다. 하루 혹은 며칠 지나 손바닥을 찔러오는 손톱을 느끼면 그제야 손바닥을 다시 펼쳐 보며 생각하겠지. ‘맞다, 손톱 깎아야 하는데.’ 뭐하느라 손톱도 못 깎고 있었을까.


엄마의 하루는 길다.  

매일 착실하게 피곤해서 아침마다 이불속 5분이 달게 느껴지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이른 시간부터 알람 따위 없어도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매일 생기 넘치는 아침을 맞는다. 결혼 전에 혹은 아이를 낳기 전에 어떤 수면 패턴이나 일상 루틴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이제 의미가 없다. 엄마의 하루는 이른 아침부터 밝게 깨이는 아이의 눈으로 시작해 저녁 잠자리에서 가물가물 감기는 아이의 눈으로 끝이 나니까. 아이 낳기 전 일을 할 때는 나인 투 식스 같은 어느 정도 업무 시간의 경계라는 게 있었는데 아이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육아와 집안일엔 그런 경계가 없다. 아침에 눈 뜨면 저녁에 잠들 때까지 해야 할 크고 작은 업무가 계속 있는 거다. 게다가 내 자식의 일이라고 엄마는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마음까지 쏟아가며 일한다. 살면서 무언가를 이렇게 부지런히 끊임없이 마음까지 담아 한 적이 있었던가. 엄마의 하루는 길 뿐만 아니라 밀도까지 높았다.


누구도 엄마의 하루라는게 이렇게나 길고 바쁜 건지 말해 준 적이 없었다. 철없는 딸인 나 역시 오랜 시간 엄마의 삶을 옆에서 보았음에도 엄마가 매일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지 그걸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몰랐다. 엄마니까, 엄마는 원래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엄마의 하루라는 게 이렇게 길고 바쁜 건지 몰랐다. 집안일만 해도 하루는 금세 저물었다. 그런 엄마의 하루를 내가 직접 살아보고서야 알았다. 엄마도 원래 그런 건 아니었을 거라는 걸. 엄마니까 당연한 건 없다는 걸. 사랑해서, 사랑하는 그 마음에 대한 최선의 화답으로 엄마는 길고 바쁜 엄마의 하루를 그리 오래도록 묵묵하고 성실하게 보내준 거였다.


내게는 앞으로도 묵묵하고 성실하게 보내야 할 엄마로서의 날들이 많이 남아있다. 제때 손톱도 못 깎는 날들은 계속 있겠지만 그 속에서도 길고 바쁜 엄마의 하루를 사랑 담아 밀도 있게 살아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살면서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며 마음까지 담아내는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던가 싶을 그 하루가, 엄마로 사는 바로 오늘이라는 걸 기억해야지. 저기서 “엄마” 하고 날 부르는 소리, 이른 아침부터 밝게 깨이는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오늘도 엄마의 하루에 가득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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