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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Feb 04. 2021

여섯 살, 첫째는 아직 한글을 모른다.

올해 여섯 살이  첫째 아이는 아직 한글을 모른다. 또래 중에는 한글을   아이들도 제법 있을 텐데 첫째는 아직 ,,  모를뿐더러 한글을 배우는 일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책은 꾸준히 보고 있으니 은근슬쩍 공부 아닌  놀이로 둔갑시켜 한글 교재도 펼쳐보고 재미있어 보이는 한글 영상도 보여주며 흥미를 끌어보았으나 이렇다  수확은 없었다. 다섯  때까지는 한글은 관심 가지고 접하면서 알아가는 정도면 충분하다 여겼기 때문에 나도  생각이 없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은 말도 글도  때가 되면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생각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한데  ‘ 조금 더디 오는  같아 마음 한편에 살살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었다.


“**야, **는 한글 알고 싶지 않아? 한글을 알면 **가 보고 싶은 책 엄마가 읽어주지 않아도 언제든지 읽을 수 있고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면 재미있는 일도 훨씬 많아지고 알게 되는 것도 많아질 텐데, **는 어때?”


“나는 아직 한글 모르겠어. 어려워.”


“그렇구나, 아직 한글이 어려워?”


“응, 나는 아직 어린이니까. 원래 어린이는 어려운 건 못하는 거야.”


말은 아주 청산유수가 아닌가. 책 보는 걸 싫어하는 편도 아니고 책 읽어주는 티비에 나오는 좋아하는 책들은 이미 몇십 번을 봐서 제목을 줄줄 꿰며 책을 가지고 제가 한 장씩 넘겨가며 구연하듯 떠들기도 잘한다. 그런데 왜, 왜 한글을 배우는 데는 티끌 같은 관심도 없는 걸까.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수 없이 많은 때를 기다리고 지나는 일을 하게 됐다. 때가 되면 뒤집기를 하고 걸음마를 하고 말이 트이고 사람들과 건강한 상호작용을 하며 병원 벽 포스터에 붙여진 영유아 성장도표에 맞게 키와 몸무게도 자라야 하는 수많은 때를 지나는 거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때에 내 아이가 머물러 주는 것이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고 때론 세상 무엇보다 간절한 일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때가 되면 한다’의 그때가 우리 아이에게 매번 늦지 않게 찾아와 준다면 그저 감사한 일이지만 늦어지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사방으로 찾아다니며 그때가 빨리 와주길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때가 대답해주기 전에는 어떤 질문의 답도 먼저 들을 수 없는 것 같다. 그저 작은 아이의 마음을 복잡한 어른의 속으로 미뤄 짐작만 해볼 뿐이다.


거실 저쪽에서 매트를 뒤집어 장난감을 잔뜩 쌓아놓고 제 집이라며 세상 신나게 놀고 있는 첫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왜 도통 한글에는 관심이 없을까, 여섯 살인데 ㄱ,ㄴ,ㄷ도 모르면 너무 늦는 게 아닐까, 어린이집 다시 가게 되면 한글을 전혀 몰라서 친구들과 있을 때나 수업 중에 혹시 난처한 상황을 마주하진 않을까 생각이 하나씩 꼬리를 문다.  


“엄마, 엄마 이거 봐! 여기가 내 집이야, 멋지지? 여기서 잠도 자고 놀이도 하고 앉아서 쉴 수도 있어!”


“응, 그래 멋지네”


꼬리물기 같은 생각을 하느라 자동응답기가 돌아가듯 건조하게 대답한 걸 느낀 걸까, 첫째가 날 채근하며 다시 말했다.  


“아이 참, 엄마, 내 집 진짜 멋진 건데? 엄마 한번 잘 봐봐!”


옷깃을 당겨오는 손길에 생각이 멈추고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아니 도대체 이 멋진걸 왜 몰라보냐는 표정의 생기 어린 진지한 얼굴. 아이의 얼굴을 보는데 문뜩 다른 생각이 마음을 스쳤다.


아직 한글을 모르는 여섯 살이 아니라 눈썰미가 남다른 영민한 아이로, 호기심이 많아 세상 모든 걸 새로운 눈으로 볼 줄 아는 생기 넘치는 아이로 널 볼 수는 없을까. 노래 부르기도 춤 추기도 좋아하는 유쾌한 아이로 좋음과 싫음이 분명한 명쾌한 아이로 널 볼 수는 없는 걸까. 이 세상에서 누군가 한 명쯤은 그런 눈으로만 널 보아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 사람이 너의 엄마인 나라면 더 좋지 않을까.


막 세상에 태어나 그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겨우 뜬 눈으로 나를 보던 너를 향해 부디 바르게 그저 건강하기만 해 다오, 했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자기가 만든 이 멋진 집을 왜 못 알아보냐며 나를 올려다보는 네 눈에서 5년 전 어느 여름날 우리에게 찾아와 준 너를 안고 눈물을 흘렸던 마음을 기억해냈다.


그래, 세상에서 누군가 한 명쯤은 너를 아직도 한글을 모르는 여섯 살이 아니라 숨겨진 가능성으로 봐주면 좋겠다. 네가 인생의 과업들을 제때 해내고 있나 아닌가만 조급하게 살피기보다 너가 바르게, 건강하게 네 자신과 삶을 대하고 있는지 찬찬히 지켜봐 주면 좋겠다. 그게 너의 엄마인 내가 될 수 있다면 참 감사하겠다.


평생 그런 눈으로 널 보아줄 수 있기를. 부디 바르게 그저 건강하기만 해 다오. 그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놀라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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