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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Mar 12. 2021

엄마 있잖아, 나는 그게 참 싫었어.

엄마 있잖아, 나는 그게 참 싫었어.


가난은  끈질기게 오래도록 우리를 따라다녔잖아. 꼬맹이일 때는  몰랐는데 나중엔   해도 알겠더라. 우리 집에서 유난히  되는 일이 많은  돈이 없기 때문이라는 . 예민한 내가 어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구석이 있어서 친구들  다니는 학원 같이  다녀도 그게 딱히 서운하거나 부럽거나 하진 않았거든. 그래도  번씩은 속상할 때가 있었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리  욕심부리는  아닌데,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없을 때는 조금 서글퍼지더라고. 학교 가면서 하루 종일   있는 돈으로  버스비만 쥐고 문을 나설 때의 무기력함. 수학여행비를 내야 하는데 그걸 엄마한테 말할  드는 미안함. 친구들이랑 돈을 나눠 내야 하는데  몫을 못하는 민망함. 내가  잘못한  아닌데, 속상하고 화가 났어. 그땐 내가  해야 한다고만 하면 정해진 답처럼 자주 안돼라고 말하던 엄마가 조금 원망스럽기도 하더라.


어릴 땐 기억이 거기에 멈춰 있어서 몰랐는데 나이를 먹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때 엄마도 많이 노력하고 있었더라고. 그때 우리 집은 거실 하나 방 하나 13평의 작은 집이었는데, 그 작은 집에서 달력 넘기듯 자주 가구를 옮기며 집을 바꾸던 엄마를 기억해. 나는 엄마가 부지런한 사람이라 인테리어를 바꾸는 뭐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작은 우리 집에서, 그보다 더 갑갑했을 우리 현실에서 숨 쉴 자리를 만들어 보려는 엄마의 노력이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돈은 없었지만 엄마는 처한 형편 안에서 성실하게 집을 가꿨고 내게 항상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해주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드렸지. 엄마는 그 성실함으로 많은 나이에 장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일하며 삶을 책임지고 있잖아. 살아내기 위해, 엄마가 쉽지 않은 세월을 견디며 무던히 애써왔다는 걸 이제는 알아.


그런 엄마가 종종 나한테 아빠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을 때가 있었어. 가끔씩은 경우 없는 누군가의 잘못을 말하기도 하고. 어릴 땐 모르고 그냥 들었는데 조금 크고 나니까 엄마의 그런 말들이 불편하고 싫더라고. 머리가 좀 더 크고 나서는 엄마한테 화도 냈지. “엄마는 왜 나한테 아빠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해? 그 사람이 그러는걸 왜 나한테 말해? 엄마가 그렇게 아빠 단점 꼬집고 다른 사람들 나쁜 점 이야기하는 게 듣는 나한테 좋은 영향이 안될 거라고 생각은 안 해?” 쓰고 보니 나 참 쌀쌀맞고 못된 딸이었구나. 그땐 엄마의 그런 말들을 소화하기도 한 귀로 흘려보내기도 힘들었어. 사실은 나도 아빠가 답답해서 화날 때가 많았는데 한편으론 내가 아빠를 그리 보고 있다는 게 불편했거든. 나를 불편하게 하던 마음을 엄마에게서도 발견하니까 괜히 더 화가 났던 것 같아. 내가 쏘아붙이면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엄마가 그러는 게 싫고 이해가 안 됐어.


아마, 엄마는 외로웠던 거겠지. 선으로 만난 아빠랑 결혼해 연고 없는 지방으로 시집와 시부모님, 아빠의 여섯 형제들과 함께 살게 된 엄마. 서울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은 거의 끊어지고 친정도 멀리 있는 엄마는 때때로 외로웠을 거야. 늦게 결혼해 나를 낳고 키우면서 어려운 형편까지 겹쳤으니 사람을 깊이 사귈 마음에 여유도 없었겠지. 이곳에서 유일한 가족은 남편과 어린 딸뿐. 그마저도 아빠와는 퍽퍽한 형편 때문에 서로가 마음이 날카로웠을 테니 남은 건 딸인 나 밖에 없어서. 나에게 나쁜 영향을 주려고 그런 게 아니라 좋은 이야기가 아닌 걸 알지만, 알면서도 가끔씩은 마음이 답답해서, 말하고 싶었던 거겠지. 엄마는 외로웠던 건데 그래서 딸인 나하고라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데. 돌아보니 나는 참 무심하고 못난 딸이었네. 나도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보니 이제야 그 시절 엄마의 답답함과 외로움이 조금 보여.


가끔씩은 나도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어. 사람은 누구나 칭찬받고 싶어 하는 구석이 있잖아. 아이일 땐 더 그렇고. 가뭄에 콩 나듯 했지만 가끔 칭찬받을만한 일을 했을 땐 나도 기대했거든. 엄마가 잘했어, 수고했구나. 해줬으면 하고. 나름 좋은 점수의 성적표를 받았을 때나 착한 일을 했을 때면 은근한 기대로 엄마에게 알렸지. 그럼 엄마는 내 노력에 대한 칭찬은 짧게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 너도 하나님께 감사하렴”은 길었어. 그럴 땐 엄마도 밉고 하나님도 싫더라. 그래서 엄마한테 화도 냈잖아.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뭘 잘 해오면 너 잘했다, 수고했다. 칭찬을 해줘야지. 맨날 하나님 소리만 하고 있냐고. 화를 내는 내게 엄마는 미안하다며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는 걸 알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해서 한 말이라고 했지. 모태신앙 짬밥으로 엄마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어릴 땐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미웠어. 우리 엄마는 나보다 하나님이 우선인가, 내가 잘한 건 하나도 없고 그저 다 하나님 덕인가. 하는 마음만 들어서.


그땐 엄마 때문에 하나님도 싫어진다고 했는데, 정말 신기하지. 지금은 엄마한테 물려받은 가장 고마운 선물이자 귀한 자산이 신앙이라고 생각해. 가끔씩 토막토막 끊어 들었던 엄마의 유년기부터 청춘시절까지 그리고 내가 옆에서 지켜봐 온 엄마의 인생을 보면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고 엄마의 삶을 붙드시고 힘주시는 분이라는 걸 믿게 됐거든. 엄마의 삶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이 서른 중반 내 인생에도 늘 함께 하시고 일하시는걸 나도 경험했어. 외롭고 고단한 일이 많았던 엄마의 인생에 때마다 그분이 위로가 되시고 소망이 되신 것처럼, 그분이 내 삶에도 그런 존재가 되셨어. 엄마, 나는 엄마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된 걸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마음도 시선도 뾰족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엔, 엄마가 나를 이해 못해주는 게 싫었어. 그때가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제일 힘든 때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많기도 했지만 내가 속상한 건 엄마가 나를 이해 못해서 내가 하고 싶은걸 좀처럼 못하게 한다고 느껴서였어. 엄마는 하나뿐인 자식 마음을 왜 저리 몰라주나 싶어서 속상하고 서운했지.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그럼 나는 도대체 뭘 할 수 있나. 왜 우리 집은 안팎으로 죄다 안 되는 일 밖에 없나 답답했었어.


머리만 컸지 마음은 설었던 딸은 저도 엄마가 되어서 그때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봐. 엄마는 마음이 여리고 걱정이 많은 사람. 그런 엄마가 늦게 결혼해 어렵게 얻은 하나뿐인 아이가 나였으니 엄마에겐 내가 얼마나 소중했을까. 엄마는 인생에 막을 수 없는 사고가 생기기도 하고 세상과 사람이 때론 잔인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어른이었으니 세상으로 걸어 나가는 내 모습을 지켜보며 얼마나 걱정이 많았을까. 부모가 되고 알았어. 부모는 부모가 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절대 자식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엄마가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식 일에는 한 걸음을 떼는 것도 조심스러워서 항상 마음을 쓰게 되는 게 부모라는 걸. 그런 마음이라서, 내가 하는 일에 늘 염려가 많았던 엄마를 이제는 이해해.


있잖아 엄마, 이렇게 돌아보니 알 것 같아. 내가 열로 꼬박 앓던 밤, 새벽까지 뜬 눈으로 내 곁을 지키며 수시로 물수건 만들어 내 열을 닦아내고 온 몸을 주물러 주던 성실한 손길이 나를 사랑한다는 엄마의 소리 없는 말이었어.


꼬마였을 때부터 다 큰 대학생이 돼서 집을 떠날 때까지, 새벽마다 내 방에 와 잠든 내 머리에 손을 얻고 드렸던 기도가 나를 향한 엄마의 진심이었다는 걸. 나 사실 잠귀 엄청 밝아서 엄마가 들어올 때마다 알고 있었는데 매번 자는척했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고 괜히 머쓱해서. 아마 나도 알고 있었나 봐. 엄마 마음을. 목석같은 철부지 딸은 “엄마 고마워, 나도 엄마 사랑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거겠지.


철없던 시절엔 엄마의 이런 점들은 닮지 말아야지, 했는데 이제는 알아.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 수 없다는 걸.


나는 엄마처럼 퍽퍽하고 고단한 긴 세월을 그리 묵묵하게 살아낼 수 없다는 걸. 나는 엄마처럼 자식에게 오래 인내하며 단단하게 사랑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엄마처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아 드리기 위해 매일 성실한 마음으로 살 수 없다는 걸.


엄마 있잖아, 그때 나는 그게 참 싫었는데, 이젠 알겠어. 그때는 몰랐던 엄마의 노력을, 알고도 모른척했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는 엄마를 이해해. 그리고 엄마, 정말 고마워. 나 같은 딸의 엄마로 살아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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