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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Mar 08. 2021

제 아픔보다 먼저인 게 많은 사람이 되었다

평소처럼 하루를 마무리하고 샤워를 하는데 예고 없이 허리에 번개 같은 통증이 내리쳤다. 척추를 따라서 온 신경과 정신까지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씻다 말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니 거의 고꾸라진 모양이 됐는데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의문의 곡소리를 들은 신랑이 욕실 문을 열었고 짜릿한 통증으로 정신없는 나 대신 사태 파악을 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허리가, 허리가 너무 아파.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자기 너무 아파. 왜 이러지?”

“허리 삐끗했나 보다. 아이고.. 얼른 나와 누워.”

“허리를 삐끗했다고? 아 너무 아픈데..”

“디스크일 수도 있고.”

“디스크? 와아......”


욕실에서 안방까지 그 짧은 몇 걸음을 가는데 신랑에게 붙들린 꼴로 질질 끌려가 겨우 자리에 누웠다. 누워도 통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헉 소리가 나게 아팠다. 사람이 움직일 때 허리를 쓰지 않는 순간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와 이거 뭐지 너무 아픈데? 이렇게 심각하게 아프다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그 생각은 곧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를 계산하는 데로 이르렀다.


누워서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칼로 베는듯한 시린 통증이  신경을 찔렀다. ‘ 당장 내일은 어쩌지?  상태로 애들을 하루 종일   있나? 설마 상태가 한참 가는  아니겠지?’ 입이  다물어지는 통증에도 나는 착실하게 내일의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가정보육으로 아이들과 종일을 보내야 하는데 갑자기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 꼴이라니. 당장의 통증보다 내일이 막막했다.


신랑은 내 상태를 보더가 자기가 내일 연차를 쓰고 집에 있겠다고 말했다. 요즘 한참 바쁜 회사일을 미룬다니 그것도 괜스레 미안해졌다. 미안해하는 내게 신랑은 건강이 먼저고 아픈 걸 치료하는 게 우선이니 걱정 말라고 했다. 착하고 고마운 사람. 신랑과 허리 상태와 내일 일에 대해 대화를 좀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까지도 그런 생각을 했다. ‘자고 일어나면 생각보다 괜찮아져 있을지도 몰라. 그래, 그럼 좋겠다.’


아무렴, 어림도 없었다. 누워만 있는데도 밤새 느껴지는 통증에 잠들 무렵 했던 기대는 이미 야무지게 빗나갔다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새벽 내 옅은 곡소릴 내며 통증과 씨름하면서도 이렇게 계속 아프면 아이들은 어쩌지, 신랑이 회사를 며칠씩 쉴 수도 없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내 몸이 아파도 가족들을 먼저 생각하는 퍽 성실한 엄마가 되어있었다.


역시나 아침에도 통증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나무늘보처럼 겨우 걸어간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원래 자세도 좋지 않아 척추가 많이 휘어있고 디스크도 조금 의심된다 했다. 다행스러운 건 지금 통증은 어떤 충격이나 무리로 생긴 급성 근육통 같다고. 당장은 급한 불부터 꺼야 하니 물리치료와 함께 수액을 맞았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가 아니고 낫기까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상황은 아니라는데 감사했다.


허리를 뜨끈하게 풀어주는 물리치료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생각했다. 엄마는 제 아픔보다 먼저인 게 많은 사람이 되는 거구나. 이기적이고 철없던 내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다 보니 온몸에 느껴지는 당장의 통증에도 살펴야 할 이들과 해야 할 일들을 먼저 염려하고 있다는 게 꽤 기특하기도 조금 짠하기도 했다. 엄마가 왜 대단하고 놀라운 이름이 되는지 몸으로 경험하고 마음으로 배운다. 노력으로 사람의 건강과 안전을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다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만큼은 모든 부모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이 부디 건강하길.

모쪼록 오래도록 모두 안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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