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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Jun 24. 2021

놀이터 가자!

“놀이터 가자!”


이 다섯 글자는 여섯 살 첫째 아이에게 최고의 문장이자 최고의 장소이고 최고의 기쁨이다. 놀이터는 끝 모를 아이의 울음도 단번에 사그라들게 하는 최고의 안정제, 극으로 치달은 아이와의 전쟁도 빠른 휴전으로 인도하는 평화협정이다. 도대체 너에게 놀이터는 무엇이기에.


세월 모르고 어설프게 어른이 되어버린 엄마에겐 이젠 놀이터의 매력이 그리 와닿지 않는다. 시소 두 개와 한 쌍의 그네 그리고 미끄럼틀이 있는, 세계 어디나 비슷한 배치를 한 고만고만한 크기의 놀이터들. 그런 놀이터에 대해 이야기하며 “하루에 열 번, 아니 하루 종일 가면 좋겠어!” 라며 웅변하듯 힘주어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서 놀이터에 대한 진심과 설렘을 상기해볼 뿐이다.


놀이터 예찬가인 첫째는 또래보다 키가 한참 작아 놀이터에서 마음껏 놀려면 아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놀이터에 도착한 순간부터 “엄마 나 그네 밀어줘요!” “엄마 여기 올려줘요!” 하는 주문이 시시각각 쏟아진다. ‘도대체 그네는 몇 살쯤 되어야 혼자 탈 수 있는 것일까.’는 여섯 살 놀이터 죽순이 엄마의 가장 진지한 궁서체 질문이다.


하나는 자기가 탄 그네를 밀어달라, 하나는 자기를 안고 그네를 타라, 두 아이의 빗발치는 요구사항에 엄마는 곧 두 손이 모자라고 두 발이 바빠진다. 놀이터에서의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그저 즐거운 놀이라면 엄마에겐 강제 노동 그 어디쯤 아닐까.


둘째를 안고 그네를 타며 틈틈이 첫째가 탄 그네를 밀어준다. 짧은 그네 타기를 즐긴 둘째는 이제 돌아보지 않는 직진본능으로 놀이터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2단 분리가 시작되면 작업 반경이 상당히 넓어진다. 아직 어린 둘째를 초단위로 살피며 첫째의 요구 사항들을 들어주고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과 잘 노는지 지켜보다 필요하면 중재도 해야 하니 놀이터에서 엄마 아빠의 역할이란 여간 바쁜 것이 아니다.


아직 엄마의 도움을 필요로  때가 있지만 아이는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아이들과 금세 친구가 되고 저들만의 놀이를 만들어 논다.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이들과 친구가 되고 함께하는 것을 가장 쉽게 그리고 많이 경험하는 장소일 것이다. 아이들은 초면에 스스럼없이 서로 친구가 되고 규칙을 정하고 경쟁하고 전략을  협력한다. 아이들의 놀이 속에는 인생 희로애락이  들어있다. 아이는 놀이를 하며 기쁨과 미움과 억울함 즐거움을 모두 겪으며 저만의 방법으로 소화해낸다. 놀이터에서 노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의 모든 감정을 골고루 경험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아이에게 놀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놀이터를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는 아이도 자라 가며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는 즐거움을 알아갈 거다. 학교에서 혹은 집에서, 어린 시절의 나처럼 만화를 보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거나,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서 혹은 혼자서 저만의 무언가를 발견해 갈 것이다. 아직은 밀어주는 엄마의 손이 있어야 좋아하는 그네를 탈 수 있는 작은 아이가 앞으로 조금씩 스스로 쌓아갈 저만의 놀이와 즐거움을 생각하면 그것이 꽤나 궁금하고 퍽 기특하기도 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놀이와 즐거움에 무심해지고 박해지는 나를 비롯한 많은 어른들을 생각하면, 나는 아이들이 나이를 먹어도 저만의 놀이가 있는, 몇 살이 되어도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어색하거나 인색하지 않은 어른이 되면 좋겠다.


아이들이 평생 즐거움을 누리는 어른으로 자라 가도록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 나도 아직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놀이터에 대해 내게 말하던 아이의 표정을 때마다 기억한다.


“엄마, 놀이터는 왜 하루에 한 번만 가? 열 번씩, 아니 하루 종일 가면 좋겠어! 나는 놀이터가 너무 좋아!”


아이들은 놀이터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놀이터에 가면 내내 땀나게 뛰어다니며 신나게 노는 날도 있고 같이 놀만한 아이들이 없어 실망하거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내고 울며 돌아오는 날도 있다. 그건 아이의 몫이다. 좋아하는 곳에서 무엇을 할지, 누구와 놀지, 그걸 결정하고 소화하는 것은 아이의 영역인 거다. 놀이터에서 아이는 많은 사람을 만나 함께 하는 시간을 쌓아가며 헤어짐의 안녕도 경험한다. 함께 놀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즐거움과 억울함이나 분노를 다루는 경험을 하며 자란다. 놀이를 하며 아이는 배우고 성장한다.


아이의 놀이를 위해 내가 할 일은 그저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자주 나가는 것이다. 놀이터에서 쏟아지는 두 아이의 요구사항에 두 손을 쪼개고 두 발을 빠르게 움직이며 같이 놀아주는 것. 그게 내가 아이가 오래도록 즐거움을 느끼는 어른이 되도록 돕는 가장 쉽고 성실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살아갈 내일이 더 많은 아이들이 단단하지만 굳지 않은 마음을 가진 어른들이 되면 좋겠다. 농사를 지으며 땅도 살도록 한 번씩 흙들을 곱게 섞어 주듯이 틈틈이 제 마음에 즐거움도 담을 줄 아는, 오래도록 숨이 도는 땅이 되기를. 하원 시간 10분 전, 오늘도 아이들의 물과 간식을 챙긴 가방을 들고 첫째를 데리러 간다. 어린이집 문이 열리면 운동화를 신자마자 뛰어나오며 아이는 내게 또 외칠 테다.


“엄마! 놀이터!”

“그래, 우리 놀이터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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