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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A Feb 01. 2023

마음에 목차를 세우자

감정에 단어를 붙여 쪼그라뜨리자

때때로 휘몰아치는 감정에 지배당할 때가 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때, 보통 밤에, 나 혼자 있을 때 유독 그렇다. 그러면 나는 메모장이든 일기장이든 나만의 빈 공간을 찾는다. 대부분 쓰는 곳은 하얗고 밤은 끝없이 밀려오기만 한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질 수 있는 공간에 풀어내다 보면 어느샌가 성난 파도 같은 감정이 희석되곤 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마저도 힘든 날이 있다. 아, 오늘 너무 힘들었다- 또는 아, 오늘 진짜 행복했다!로 쓰려고 하면 막상 죽고 싶다, 너무 좋았다, 로 끝나고야 말았던 그런 날. 


나는 무언가를 표현하지 못하면 답답함을 느낀다. 누구나 한 번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몸의 감각, 이를테면 눈을 깜박이거나 뜨고 있는 것, 침을 삼키는 것, 팔을 움직이거나 걷는 것과 같은 생각하지 않고 사용했던 감각들에 작은 이상만 생겨도 순식간에 답답함과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 감정과 내 생각을 원하는 대로 표현하고 나만의 공간에 마음껏 표출해 내는 행위는 답답함에서의 구원뿐만 아니라 고단하고 지루했던 내 삶에서의 구원이다. 


잘 쓸 필요는 없을 글이다. 일기는 보통 누구 보라고 쓰지는 않으니까. 그렇다. 누가 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솔직해지고 더 과감해지고 때로는 평소에 쓰지 않던 단어와 문장들로 써내려도 괜찮을 것이다. 명징하게 직조한다고 해서 누가 똑똑한 척한다고 손가락질하거나 욕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답답함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니까. 그리고 감정을 해소하는 도피처 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무작정 장황하게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제안한다. 당신의 감정에 단어를 붙여보라. 거대하기만 했던 것들이 작아질 것이다. 특히, 우리는 한글을 쓴다. 한글만이 가지고 있는 단어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표현과 표출, 해결과 해소. 앞서 언급한 네 개의 단어는 거의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르다. 

표현 :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언어나 몸짓 따위의 형상으로 드러내어 나타냄.
표출 : 겉으로 나타냄.
해결 : 제기된 문제를 해명하거나 얽힌 일을 잘 처리함.
해소 : 어려운 일이나 문제가 되는 상태를 해결하여 없애 버림. 

느낌도 다르다. 표현은 그저 내가 느낀 어떤 것을 글이든 몸짓이든 어떤 형태로든 드러내는 느낌이라면 표출은 좀 더 강력하고 뿜어내는 느낌을 준다. 고민하고 풀어내는 해결의 과정을 통해 묵혀있던 감정을 해소하지 문제를 해소해 버리지는 않는다. 재밌다. 국어사전에 단어를 검색하면 유의어가 함께 뜨는데, 보면 어떤 단어는 굉장히 딱딱하고 어떤 단어는 굉장히 감정적이다. 눈앞에 바로 그려지는 단어도 있다. 같은 단어인데도 다른뜻을 가진 동음유의어는 더 재밌다. 같은 단어인데 뜻에 따라 확 변해버리는 게 매력적이다. 


또, 단어는 간단하다.'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해 주기를 바라면서,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이라는 뜻을 가진 마밀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 Mamihlapinatapei)는 세상에서 가장 긴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자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조별과제 조장 하실 분...?'이라는 짧은 문장하나로 모두가 이해하게 만들어 버렸지 않은가. 


감정을 담고 있는 단어들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때로 감정은 거대해져서 감당할 수 없다. 그럴 때, 단어로 쪼그라뜨리는 거다. 숨 쉴 공간을 만들어주는 거다. 그리고 빈 공간에 풀어내자.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세상엔 수많은 단어가 존재하고 나는 제안한다. 우리의 감정에 목차를 만들 것을, 필요할 때 꺼내 쓰고 숨 쉴 공간을 나누고 표출하고 해소하기를. 그래서 우리의 밤이 조금 더 평온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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