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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A Jun 30. 2023

파마머리에 행복이 있어

20대 표류기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머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성질이 생겼다. 거울만 보면 머리에 무슨 짓이든 해버리고 싶은 것이다. 매일 똑같은 머리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도 지루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달라질 것 없는 내 일상에 무언가 이벤트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에게 제일 강한 추진력이라는 연료가 있으니 언제라도 미용실에 달려가고야 마는 결과가 생기는 거 아니겠어. 


나는 반곱슬 머리에 숱이 많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 그 말인즉슨, 파마를 하기엔 상당히 위험이 있는 머리라는 거다. 파마를 하고 나면 부스스해지고 감당이 안되게 부풀어버리고 만다. 나는 사실 그 지점을 좋아하는데 보통 주위의 사람들은 그 지점에서 파마를 만류한다. 사실 나도 감당이 안 되는 때가 있긴 한데, 그래도 좋다. 나는 나의 헝클어진 모습이 꽤 맘에 들 때가 있다. 부스스한 머리에 좋아하는 티셔츠에 훌렁거리는 바지, 슬리퍼에 화장기 없는 그런 날. 하루종일 거울 한 번 안 보고 돌아다니는 그런 날. 자유로운 나를 봐, 자유로워.


그렇다. 사실 오늘 나는 또 한 번의 파마를 했다. 작년에 나는 파마를 했다가 매직을 하고 또 파마를 했다가 매직을 했다. 그 상태로 쭉 길러온 머리는 어느 순간 어깨를 넘겼다. 음, 지루해. 역시 나는 복슬거리는 파마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했다. 꽤 마음에 든다. 


파마를 하겠다고 미용실에 가면 다들 말린다. 그러면 나도 망설이게 되지. 하지만, 그걸 이겨내고 머리를 말리고 나면 오, 이런 머리가 어울리시네요? 한다. 뭐 물론 서비스 멘트도 있겠지만 그 순간이 나는 좋다. 미용실을 나서면 은은하게 나는 파마약 냄새를 맡으며 비춰볼 수 있는 곳이란 곳에는 죄다 비춰보며 걷는다. 평소엔 찍지도 않던 셀카도 여러 장 찍어댄다. 머리스타일 하나 바꿨을 뿐인데 새로 태어난...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와는 다른 하루가 되어 버린다. 


누군가는 그 꼬락서니가 뭐냐 할지도 모르지. 또 누군가는 당황스러워 이어갈 말을 찾느라 땀을 뺄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내 머리가 마음에 들어 자신의 머리에 시도할지도 모르고. 내가 또 질려버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저 좋다. 복슬복슬 꼬부랑거리는 머리에 행복이 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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