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표류기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머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성질이 생겼다. 거울만 보면 머리에 무슨 짓이든 해버리고 싶은 것이다. 매일 똑같은 머리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도 지루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달라질 것 없는 내 일상에 무언가 이벤트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에게 제일 강한 추진력이라는 연료가 있으니 언제라도 미용실에 달려가고야 마는 결과가 생기는 거 아니겠어.
나는 반곱슬 머리에 숱이 많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 그 말인즉슨, 파마를 하기엔 상당히 위험이 있는 머리라는 거다. 파마를 하고 나면 부스스해지고 감당이 안되게 부풀어버리고 만다. 나는 사실 그 지점을 좋아하는데 보통 주위의 사람들은 그 지점에서 파마를 만류한다. 사실 나도 감당이 안 되는 때가 있긴 한데, 그래도 좋다. 나는 나의 헝클어진 모습이 꽤 맘에 들 때가 있다. 부스스한 머리에 좋아하는 티셔츠에 훌렁거리는 바지, 슬리퍼에 화장기 없는 그런 날. 하루종일 거울 한 번 안 보고 돌아다니는 그런 날. 자유로운 나를 봐, 자유로워.
그렇다. 사실 오늘 나는 또 한 번의 파마를 했다. 작년에 나는 파마를 했다가 매직을 하고 또 파마를 했다가 매직을 했다. 그 상태로 쭉 길러온 머리는 어느 순간 어깨를 넘겼다. 음, 지루해. 역시 나는 복슬거리는 파마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했다. 꽤 마음에 든다.
파마를 하겠다고 미용실에 가면 다들 말린다. 그러면 나도 망설이게 되지. 하지만, 그걸 이겨내고 머리를 말리고 나면 오, 이런 머리가 어울리시네요? 한다. 뭐 물론 서비스 멘트도 있겠지만 그 순간이 나는 좋다. 미용실을 나서면 은은하게 나는 파마약 냄새를 맡으며 비춰볼 수 있는 곳이란 곳에는 죄다 비춰보며 걷는다. 평소엔 찍지도 않던 셀카도 여러 장 찍어댄다. 머리스타일 하나 바꿨을 뿐인데 새로 태어난...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와는 다른 하루가 되어 버린다.
누군가는 그 꼬락서니가 뭐냐 할지도 모르지. 또 누군가는 당황스러워 이어갈 말을 찾느라 땀을 뺄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내 머리가 마음에 들어 자신의 머리에 시도할지도 모르고. 내가 또 질려버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저 좋다. 복슬복슬 꼬부랑거리는 머리에 행복이 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