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한 어두컴컴한 카오산로드
대한민국 제주
방콕행 비행기에 오르다
제주에서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제주-방콕 직항 노선이 사라진 상태다.) 설레었다. 10대 시절, 짧은 기간 일본 홈스테이, 중국으로 간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전부였다. 모두 보호자가 있었다. 선생님 혹은 가이드. 패키지가 아닌 개인으로 가는 거라 무척 떨렸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친구를 졸라 같이 데려갔다. 32일간 태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를 여행했다. 5일 간만 친구가 동행한다. 친구 재홍(가명)은 태국 여행을 마치고 다시 제주로 돌아간다. 생각해보면, 재홍과 있는 여행은 앞으로 매년 있을 해외 배낭여행의 인큐베이팅(Incubating) 같은 거였다. 당시 태국은 한류 열풍이 시작되던 때였다. 그래서 함께 타는 비행기에는 방콕으로 귀국하는 태국인들로 가득했다. 처음 들어보는 낯선 언어가 귓가에 맴돌았다. 신기했다. 앞으로 약 5시간 뒤면 지금 이곳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질 거란 사실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태국 방콕의 향기, 분위기, 문화, 그곳 사람들의 모습은.
난생처음 방콕, 긴 밤의 서막
새벽 1시 조금 넘었을 무렵 방콕 수완나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새로 지은 공항답게 매우 세련된 모습이었다. 살짝 아쉬웠던 건 화장실이 좌우 끝에 있었다. 볼일을 봐야 하는데 화장실까지 참 오래 걸었다. 수완니폼 공항은 런던 공항 다음으로 많이 방문하는 곳임이 실감이 났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참 많은 입국자가 있었다. 평생 제주에서 볼 외국인 수만큼 여기서 본 것 같았다. 택시를 타기 위해 밖으로 향하던 우리는 다시 공항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 열리면서 공항 안으로 들어온 무척 더운 공기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5시간 전엔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는데. 이제야 따뜻한 나라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두꺼운 점퍼와 옷을 벗고 반바지와 반팔을 배낭에서 꺼내 입었다. 공항 안은 에어컨 때문에 서늘했다. 얼른 따뜻한 밖으로 나가야지. 재홍과 나는 택시를 잡기 위해 공항 밖으로 나갔다.
터미널에 세워진 택시를 보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떠나기 직전, 뉴스에서 보았던 한 사건이 떠올랐다. 혼자 여행을 온 한국 청년을 택시 기사가 인적 드문 곳으로 가 살해하고 금품을 가져갔던 일이 있었다. 택시가 색깔별로 있었다. 무슨 색이 안전하고, 무슨 색이 덜 안전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었다. 사실 새벽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지하철을 타고 시내까지 갔을 거다. 그래도 과거에 여행을 왔던 여행객보다는 상황이 나아진 거라고 했다. 과거에는 손님을 태우려는 택시 기사들의 호객행위가 심해서 복잡했다고 한다. 처음 해외에 나온 여행객은 분명 겁을 먹었을 거다. 이젠 택시 터미널에 설치된 기기를 통해 택시 번호표를 받아 택시를 이용하도록 바뀌었다. 랜덤으로 대기 넘버를 부여받고 제시된 Line으로 향했다. 색깔을 선택할 수 없어서 겁을 먹었다. 그래도 운전기사님이 온화하게 생긴 50대 남성이어서 안심이 되었다. 싸와디캅(안녕하세요). 카오산 로드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고 갔기 때문에 거기서 밤을 새울 작정이었다. 차라리 공항에서 밤을 새우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얼른 공항을 벗어나서 방콕을 경험하고 싶었다.
택시는 약 1시간 동안 카오산 로드로 향했다. 총알택시였다. 몇으로 달리고 있는지 보기 위해 고갤 빼서 운전석을 봤다. 시속 120km에서 140km를 왔다 갔다 했다.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는 차가 상향등을 킨 채 달려오는 바람에 순간 택시기사가 '눈뽕'을 당했다! 그래서 잠시 택시가 휘청했다! 그 바람에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차와 부딪칠 뻔했다! 나와 재홍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택시기사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우릴 안심시켰다. 생명을 걸고 탄 택시는 500바트가 나왔다. 한국 돈으로 약 15,000원이었다. 아주 해맑은 웃음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하더니 아주 컴컴한 카오산 로드 입구에 둘을 내려주었다. 마치 조난을 당한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멀리 환한 불빛이 보였다. 빛을 쫓는 나방처럼 이끌려간 곳은 카오산로드에서 유명한 맥도널드였다. 유명한 이유는 태국식으로 합장을 하고 인사하는 모습의 로널드 맥도널드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맥도널드에서 허기를 달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재홍은 사무라이 버거(한국의 불고기 버거랑 비슷) 세트를, 나는 더블 치즈버거 세트를 시켰다. 그곳에서 서양인들이 버거로 해장을 하는 중이었다. 한국은 해장국을 먹지만, 서양인들은 맥도널드 햄버거로 해장을 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사실이었다. 태국 맥도널드 햄버거 가격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태국의 물가에 비해서는 비싼 편이라고 생각했다. 곧 주문했던 버거 세트가 나왔다. 받아 든 음료 사이즈가 보통 먹던 것의 두 배 크기였다. 감자튀김도 양이 상당했다. 그걸 테이크아웃(Take out)으로 받아서 매장을 나섰다. 매장을 나서고 나니 다시 컴컴한 카오산로드가 입을 벌리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매장에는 버거를 먹으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로 가득해서 앉아서 먹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버거를 왜 시켰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도 일단 포장된 버거를 받았으니 앉아서 먹을 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냥 길바닥에 앉아서 먹을 수는 없으니까. 바닥에는 흘린 음식물을 먹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바퀴벌레가 보였다. 이곳 인간들이 뭘 흘리고 다니는지 바닥이 끈적거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껌을 밟는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긴 여정을 할 것이기 때문에 배낭을 메고 있었다. 재홍은 관광객처럼 대형 케리어를 들고 왔다. 매끄럽지 않은 바닥 위를 구르는 케리어의 바퀴소리가 캄캄한 카오산로드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가다 보니 입구가 오픈된 펍에서 일렉트로닉 계열의 클럽 노래가 흘러나왔다. 번쩍번쩍 빛나는 조명 아래서 사람들이 뒤엉켜서 춤을 추고 있었다. 가만 보니 그런 광란의 밤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펍이 길을 따라 이어졌다. 호기심이 들었다.
일단 햄버거를 해치워야 했다. 펍 길 건너에 불이 켜져 있는 호텔이 보였다. 호텔 방을 잡아야겠다. 로비로 향했다. 로비로 들어가 직원에게 비용을 물어보았다. 호텔이라고 하지만, 모텔 같은 느낌이었고 비용이 비쌌다.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원에게 잠시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우선 햄버거를 먹고 싶었다. 햄버거를 이곳에서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직원이 로비에선 곤란하고 야외에 있는 탁자와 의자를 이용하라고 했다. 고맙다고 말했다. 밖으로 나와 포장지를 뜯고 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재홍아 햄버거 다 먹고 짐만 푼 다음 저기 사람들이랑 어울려 놀지 않을래. 나는 손가락으로 갯지렁이처럼 엉겨 붙어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는 펍을 가리켰다. 아니. 재홍이는 저들이 무섭다고 했다. 제주에서 평생 산 재홍은 코가 크고 눈이 파란 등치가 큰 서양사람을 무서워했다. 펍 안에는 동양사람도 있었지만 저들의 세계에 어울리는 사람은 재홍에겐 두려운 '양놈'이었다.
백발의 서양 할아버지가 여장을 한 태국 남성을 데리고 우리 곁을 지났다. 아니, 여장한 태국 남성이 서양 할아버지를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상한 광경이었다. 가만 보니, 호텔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야한 옷차림의 태국인들이 보였다. 야한 원피스를 입었지만 어깨가 다부졌다. 긴 머리 가발을 쓴 목젖이 튀어나온 여장을 한 태국 남자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을 레이디보이라 부른다고 했다. 성전환 한 사람은 트랜스젠더라 부른다. 레이디보이 이들이 힐끗힐끗 우리를 보았다. 누군가 태국에는 다섯 종류의 남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보통 남자, 구실 못하는 남자, 트랜스젠더(여성으로 성전환한 남자), 레이디보이, 게이.
감자튀김과 콜라가 무식하게 많아서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쓰레기통에 처넣고 일어섰다. 둘은 숙소를 찾기 위해 카오산로드를 어슬렁거렸다. 걷다 보니 다시 인적 없는 컴컴한 거리가 나타났다. 우린 등치가 큰 서양인들을 보고 기가 죽어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찾기로 했다. 한국에서 미리 인쇄해온 한인 게스트하우스 약도를 보며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일단 졸렸다. 무식하게 양이 많은 감자튀김과 콜라가 배에 가득해서 노곤해진 것이다. 그래서 아무 게스트하우스든 눈에 보이면 들어갔다. All FULL. SORRY. 들어가는 게스트하우스마다 자리가 다 찼다고 했다. 한인 게스트하우스 약도를 보여주었다. 모르겠다고 한다. 편안해 보이는 소파에 누워 달콤한 휴식을 취하는 투숙객이 부러웠다. 잠시 여기서 쉬어도 되냐고 물었다. 안 된다고 한다.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보이는 게스트하우스마다 모두 자리가 없었다. 이 짓을 반복하다 보니 슬슬 피곤함을 넘어 고통스러웠다.
이 밤이 그렇게 길 줄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