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소녀 두 명과 만난 날
태국 치앙마이
신들의 도시에서 산책
이젠 슬슬 라오스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향해야 했다. 돌아가는 길에 언제 또 여길 올까 싶어서 빠른 속도로 신전들을 둘러보았다. 사실 치앙마이는 신전의 도시였다. 어쩌면 신의 도시인지도 몰랐다. 인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신의 모습이 세겨진 조형물들이 마을 곳곳에 가득했다. 팔이 여러 개 달린 코끼리신, 해태와 비슷한 사자신, 용과 같이 긴 뱀 등이 보였다. 그리고 흔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석가의 형상을 한 불상들이 있었다. 이들의 화려한 신전을 보면 얼마나 이들이 신을 모신 신전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 신전에 가까이 가서 보면 화려한 무늬가 모두 수작업으로 세겨진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데, 얼마나 고생해서 정성스럽게 작업했을지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동남아나 인도 등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그들의 섬세함에 무척 놀라게 된다. 아마 결코 단시간 내에 해내진 못했을 것이다. 태국에는 시각 디자인이나 조형 예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야시장이나 허름한 가게에 가더라도 예술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어디서 나왔을까 생각해보다가 신전을 보게 되면 이해가 바로 되는 것이다.
나는 걸어서 버스터미널까지 갔다. 물론 대중교통 비용을 줄이기 위함도 있었지만, 역시 난 걷는 게 체질적으로 맞는다. 원래 에너지가 많은 타입인지, 가만히 앉아 있거나 서 있는 게 좀처럼 하기 힘들다. 안절부절못해서 답답할 바에는 차라리 걸어서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게 편하다. 그래서 걷고 또 걷고 동네방네 들쑤시고 다니게 된다. 아마 조금이라도 차분함이 그때 있었더라면 현지인에게 말을 걸어보고 동네 친구를 사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땐 아무 현지인에게 말을 건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냥 걷고 또 걸으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멀리서 보면 그걸로 만족했다. 지금은 좀 더 사람들 개개인 삶에 관심이 가지만.
터미널에서 만난 두 제주도민 / 진드기 때문에 잠을 못 자
치앙마이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까지 가는 법은 2가지가 있었다. 치앙마이에서 바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방법과 Loei라는 곳을 갔다가 거기서 루앙프라방까지 가는 방법이 있었다. 정류장까지는 구시가에서 걸어서 2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버스 티켓을 구하려고 보니 그날 떠나는 건 모두 만석이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말이다. 그래서 망연자실해서 벤치에 앉아 있었다. 사실, 2시간을 더운 나라에서 걷는 건 진이 빠지는 일이다. 피로감이 확 밀려왔다. 이 상태로 또 걸어서 구시가로 향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 소리칠지도 몰랐다. 걸어서 2시간 거리이니 툭툭이를 타기엔 조금 부담될 수 있는 비용이 나올지 몰랐다.
그런데 어디서 친숙한 말투가 들렸다. 한국말이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제주도 사투리였다. 제주도민인 나로서는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새침하게 생긴 여자 두 명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상황 설명과 내 소개를 했다. 그들은 나와 같은 고향이라는 사실에 무척 놀라며 반가워했다. 사실 제주도에서는 지나가는 모든 고향 주민들이 전혀 반갑지 않았지만 타국에 왔다는 사실만으로 굉장한 유대관계가 생기는 것이다. 마치 혈육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랄까. 둘은 나보다 2살 어린 동생들이었다.
우린 이곳에서 더 죽치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고, 구시가로 향하기로 했다. 둘은 향후 일정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버스 티켓을 구입하지 않기로 했고, 나는 떠나는 날을 확정했다. 12월 30일, 이틀 뒤. 하지만 그 마저도 확실하지 않은 대기표였다. 떠나는 날 왔을 때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는 표였다. 우리는 툭툭이 기사에게 흥정을 해서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을 깎았다. 우린 구시가로 향했다. 이렇게 세상 편한 걸 한참 걷고 나서 지쳐야만 탈 수 있다니. 총 60바트, 1인당 20바트씩 지불하기로 했다.
구시가로 향하는 길에 다리가 있다. 다리에는 태국 국기가 걸려 있고, 아름다운 꽃이 장식되어 있었다. 타지에서 만난 인연은 참 반갑다. 구시가에 도착한 셋은 저녁을 같이 먹기로 약속했다. 둘은 이미 터미널에서 숙박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숙소를 예약한 상태였다. 나는 이들이 묶는 곳보다 더 저렴한 곳을 원했기 때문에 다른 숙소를 예약하기로 했다. 그런데 당장은 인터넷으로 예약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진 않았고, 저녁 먹을 시간까지 좀 남았기에 두 발로 걸어서 숙소를 찾자는 생각을 했다. 나는 두 사람과 연락처를 교환했고, 이따 보자며 헤어졌다.
나는 여러 숙소를 돌면서 실제 방의 상태를 살폈다. Do you have a room?(방 있어요?)라고 묻고, 방이 있다고 하면 Show me your room.(방좀 보여줘.)라고 또 물었다. 대부분 이렇게 물어보면 방을 보여준다. 나는 여러 숙소를 돌아다닌 끝에 저렴하고 가성비가 좋아 보이는 1인 1실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꼭 시골에 있는 여인숙 같은 분위기였다. 낡은 나무 문과 창에는 쇠창살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나에게 끔찍한 밤을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짐을 푼 나는 둘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 나는 이들과 정말 푸짐하게 식사를 했다. 불고기, 쏨땀, 맥주, 채소 요리를 먹었다. 태국의 병맥주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다. 우리 셋은 알딸딸함을 느끼며 기분 좋아했다. 여행은 정말 사람들의 마음을 열리게 하는 것 같은 마법이 있다. 처음 본 사람끼리, 그것도 동성이 아닌 이성이 만나 술을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게 고향에서 가능한 일일까. 참 행복했다. 어쩌다 보니 시간이 늦었고 우린 2차를 가기로 했지만 열려있는 술집을 찾을 수 없었다. 여긴 대부분 10시가 넘으면 식당이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겨우 돌아다니다가 레스토랑을 찾을 수 있었고 우린 안에 들어가 감자튀김과 맥주를 시켰다. 그런데 비용 대비 질이 형편없었다. 간단히 한 잔씩만 마시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우린 뭔가 아쉬운 마음에 맥주와 안주를 사서 밖으로 나갔다. 노상을 하기 위해서. 구시가 외각을 두르는 강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우린 사온 맥주와 안주를 펼쳤다.
이들에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여행 내내 문제가 연속이었다고 했다. 불운을 몰고 다니는 시스터즈라고나 할까. 인천에서 떠나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20만 원을 더 주고 다음 날 출발하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고 했다. 그렇게 20만 원을 더 주고 티켓을 끊었지만, 그것마저 놓칠 뻔했다고 한다. 나는 불운이라기보다 게으름이라고 속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미리 출발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그냥 안 좋은 일이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태국에 와서 한 명은 머리가 까지고, 둘을 술 먹고 두 차례 토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 라오스로 가는 버스도 놓쳐서 탈 수 없었다고 한다. 한 명은 오기 직전에 팔이 부숴져서 깁스를 한 채로 왔는데, 땀이 차서 피부에 습진이 걸렸다고 했다. 그래서 태국에서 병원을 가는 바람에 돈이 엄청나게 깨졌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팔 수술을 바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하면서 둘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들을 달래고 다독여주었다.
우린 약간 취한 채로 치앙마이의 구시가를 활보했다. 꼬불꼬불 복잡한 미로 같은 길을 걸었다. 시골에 온 듯 마음이 편안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스페인 여자 한 명과 마주쳤다. 그런데 이 여자는 술에 잔뜩 취해 자기의 숙소를 찾지 못하고 길을 헤매는 중이었다. 동정심 많은 우리 셋은 이 여자가 길바닥에서 노숙하지 않도록 숙소 찾는 걸 도와주었다. 스페인 여자는 우리에게 감사하다며 거의 절을 하다시피 했다. 나는 이 여자들을 숙소에 데려다주고 내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오자마자 피곤해서 바로 침대에 뻗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온몸을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간지러워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마치 수 없이 많은 가느다란 솜털이나 손가락으로 내 온몸을 간지럽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어나서 몸을 털어냈다.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누울 때마다 침대에 있는 뭔가가 내 몸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불쾌한 기분이 들어서 얼른 샤워를 했다. 그리고 반바지 반팔티를 벗고 긴팔 긴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양말로 손과 발을 감쌌다. 어떤 생물체도 옷을 뚫지 않고는 들어올 수 없을 거라 믿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하지만 수 없이 작은 어떤 대규모 군대가 옷 속을 파고들어 여전히 날 간지럽히는 바람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모기-진드기 퇴치제가 가방에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그래서 마치 방역 직원처럼 침대를 녹일 정도로 퇴치제를 뿌렸다. 그런데 진드기의 공격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얼른 방에서 탈출해서 밖으로 나갔다. 그랬더니 로비에 앉아서 프랑스인 남녀가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분명 숙소로 들어올 땐 프랑스인 넷이 모여서 정답게 수다를 떨며 웃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괜히 엮기고 싶지 않아서 구석에 앉아서 눈을 붙였다.
그런데 모기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내 온몸에 주삿바늘을 박아서 피를 뽑는 것 같았다. 물린 자리를 칼로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간지러웠다. 그래서 새벽 4시까지 버티다가 방으로 갔다. 프랑스인 남녀 둘은 그때까지도 싸우고 있었다. 매번 생각하지만 프랑스인들은 도무지 적당한 선에서 말싸움을 타협하는 법이 없는 것 같았다. 4시부터 오전 8시까지 겨우 4시간에 불과했지만 24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마치 드래곤볼에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이 이런 느낌일까.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얼른 해가 보고 싶었졌다. 이렇게 끔찍한 경험은 그때까지 살면서 처음이었다.
난 일어나자마자 입고 있었던 옷을 모두 세탁소에 맡겼다. 그때 조금만 더 정신이 나갔더라면 실제 옷에 불을 붙여서 태웠을지도 모른다.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을 나는 정말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 몸이 간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