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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틴틴문 Feb 16. 2020

커피 천국 치앙마이

도이창 커피를 맛보다

태국 치앙마이


커피 천국 치앙마이

  아침에 일어나니 우리 방에 나 밖에 없었다. 이곳엔 내가 왔을 때부터 빨래 썩는 냄새가 진동했는데, 오전에 일어나니 발 냄새랑 이상한 구린내가 섞이면서 엄청난 악취가 났다. 그래서인지 어제 처음 본 몸이 말라 간디처럼 생긴 태국인과 중간에 들어온 아랍인 모두가 도망가고 없었다. 나도 서둘러 이곳을 떠나기 위해 짐을 쌌다. 당시 치앙마이의 매력을 몰랐던 나는 라오스로 넘어가기 위한 휴식처쯤으로 치앙마이를 정의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라오스로 떠날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야간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낮까지 돌아다니다가 정류장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래서 20kg짜리 배낭을 메고 지도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정처 없이 떠돌기 시작했다. 관광객은 절대 다니지 않을 황량한 도로, 허름한 상점, 낡은 차, 버려진 나무 조각, 공터만 보였다. 결국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보니 가이드북에서 치앙마이는 커피로 유명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었다. 그래서 도이창(Doi Chaang) 커피를 찾아갔다. 





  진한 도이창 커피를 주문했다. 진한 커피와 라떼로 마실 수 있도록 따뜻한 우유가 함께 나왔다. 에스프레소라고 하기엔 양이 많았고, 아메리카노라고 하기엔 양이 적었다. 아마도 물은 적게, 에스프레소는 투샷(Two shot)으로 내린 게 아닌가 생각했다. 마치 호주 커피 플랫화이트(Flat White)처럼 말이다. 플랫화이트가 우유를 기반으로 했다면 도이창커피는 물이 기반이지만. 


  아침 햇살이 가볍게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솔솔 부는 바람을 맞으며 도이창 커피를 마셨다. 사실 당시엔 커피 맛을 잘 몰랐다. 쓰고 약간은 시큼한 맛의 고소한 커피 향이 느껴지는 한약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커피의 향을 맡고, 카페인이 몸 안으로 들어오면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무엇인가 집중이 되는 느낌이 좋았다. 특히 아늑한 카페에서 기분 좋게 만드는 음악까지 함께 한다면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럼 그 고소한 향과 카페인에 취해 마치 술을 마신 듯 알딸딸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창 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카페 안으로 시선을 돌려 아늑한 내부를 보며 황홀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커피를 마시다가 우유를 섞어 맛을 보았다. 또 다른 맛이 났다. 그래서 이때 경험한 걸 바탕으로 종종 스타벅스에 가면 에스프레소 투샷(Two shot)을 시켜서 마시다가 우유를 조금 추가해서 마시고는 한다. 


  태국 북부에는 도이창(Doi Chaang), 와위(Wawee), 도이퉁(Doi Tung), 아카아마 커피(Akha Ama)라는 4대 명품 커피 브랜드가 있다. 치앙마이에 명품 커피 브랜드가 발달한 이유는 태국 왕실 덕분이다. 치앙마이는 1960년대 말까지 아편 농사를 짓고 빈곤하게 살았다. 화전 농업을 주로 하여 산림이 많이 망가졌다. 1969년 푸미폰 국왕은 고산족이 아편 대신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과일, 채소, 커피, 잼, 와인, 화훼작물을 재배하도록 돕는 로열 프로젝트(The Royal Projects)를 진행했다. 그 결과 마약 퇴치는 물론 생계수단 마련, 산림 보호까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공로로 로열 프로젝트는 1988년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이라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태국 왕실은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커피와 차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그 덕분에 태국 북부에서 생산된 커피와 차는 세계적으로 품질과 맛을 인정받는다. 대부분의 공정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친환경적이다. 로스팅 또한 돌화덕의 일정한 복사열을 이용한 스톤 로스팅 방식이라 신맛보다 쌉싸래한 맛이 강한 편이다. 


  기분 좋은 상태로 카페를 나섰더니 배가 출출해졌다. 그래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면서 또 걷기 시작했다. 길에서 마주친 한 허름한 로컬 식당에 들어갔다. 요리하는 공간이 있는 가볍게 지어진 집에 야외에는 탁자와 의자가 있었다. 동네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 같았다. 그곳에 앉아서 무난해 보이는 음식을 시켰다. 



 


  돼지고기와 야채를 매콤한 양념으로 볶은 것과 프라이 한 계란을 얹은 덮밥이었다. 저렴한 비용이었지만 생각보다 양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맛이 좋았다. 태국인이 즐겨먹는 음식은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행복했다. 이상하게 관광객에게 맞춰진 고급 식당보다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그런 식당이 끌리는 게 무엇일까. 그들이 먹는 친숙한 요리를 먹고 싶었다. 비록 완벽하게 나와 맞진 않더라도 누군가의 낯선 문화를 경험함으로써 낯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의 영역을 넓히는 게 좋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 어릴 때 많은 것을 경험해보아야 한다고. 그 이유는 나이가 들어버리면 뇌가 닫혀버리니까 내게 익숙하지 않은 걸 거부하게 된다고 한다.(간단히 말해 못 먹어본 음식은 거부감이 들어 잘 못 먹는다.) 뇌가 닫혀버리기 전에 낯선 걸 다양하게 경험해본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즐길 수 있는 게 그만큼 많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걸 느껴보고 맛보고 경험하고 겪어봐야 한다고 한다. 실패하는 건 어쩌면 많은 걸 시도해보는 것이니까, 그 속에서 더 많은 걸 느끼고 나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실패하는 것도 손해 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 많이 실패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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